경제 이론에 대한 소박한 의문
- 구분특집(저자 : 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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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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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34
경제 이론에 대한 소박한 의문
박 찬 주
Ⅰ. 비교우위
1. 개 념
2. 규범과 사실의 혼동
3. 생산가능성에 대한 판단의 기준
Ⅱ. 보상이 따르지 아니하는 경제정책
1. 쌀시장 개방논쟁
2. 보상의 당위성
Ⅲ. 일방적인 이익 공여정책
Ⅰ. 비교우위
1. 개 념
1) 쌀시장 개방 문제를 둘러싸고 일반인들이 알게 된 경제지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David Ricardo의 ‘비교우위 이론’(comparative advantage theory)이다. 비교우위 이론이란 예를 들어 어느 두 국가가 X, Y라는 두 재화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어느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하여 두 재화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어느 재화나 생산요소가 적게 투입되는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에 있다 하더라도 각 국가가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재화, 즉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
ge)에 있는 재화에 전문화함으로써 국가간의 분업과 무역을 발생할 수 있으며, 이 때 두 국가 모두 이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정립되고 있다.
2) 그러나 너무 추상적인 설명이므로 좀더 쉽게 설명한다면 이렇다. 경영능력이 뛰어난 CEO가 타자실력 또한 뛰어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 CEO는 경영능력이나 타자실력 어느 면에서나 여비서보다 절대우위에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CEO가 여비서에게 지급하는 사소한 급여 때문에 자신이 타자까지 치겠다고 여비서를 해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CEO는 자신의 시간을 타자하는 데 투입하는 것보다는 경영에 전념함으로써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 CEO가 여비서에 비하여 절대우위에 있는 타자실력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이론화하는 데 고안된 개념이 ‘상대우위-상대열위’의 개념이다.
2. 규범과 사실의 혼동
1) 쌀시장 개방은 세계경제를 지향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비교우위 이론이 무소불위적 이론인가 하는 점에 관하여 경제학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솔직히 의문이 있다. 필자가 가지는 의문들 가운데 하나가 비교우위 이론은 규범성과 사실성을 혼동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2) 비교우위 이론에 대한 위의 설명에서 본 것처럼 두 국가가 투입된 생산요소를 달리하는(따라서 생산비가 서로 다른) 두 재화는 두 국가에서 현재대로 생산하여 소비하는 것보다는 상대우위에 있는 재화만을 생산한 후 이를 교환하여 소비하는 것이 서로 이익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사실에 관한 문제이다. 이를 Gregory Mankiw의 경제학(Principles of Economics, 2nd ed.)의 예(55-59면)를 차용하여 설명하면 이렇다.
농부와 목장주인이라는 두 생산주체가 고기와 감자라는 두 재화를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1파운드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옆의 표(1)과 같다고 하자. 그러면 두 생산주체가 일주일에 동일하게 40시간의 노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40시간을 투입할 때의 생산량(파운드)은 옆의 표(2)와 같아질 것이다(우리는 목장주인은 농부에 비하여 고기와 감자 생산에서 절대우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표1)
1파운드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고 기
감 자
농 부
목장주인
20
1
10
8
(표2)
40시간 투입할 때의
생산량(파운드)
고 기
감 자
농 부
목장주인
2
40
4
5
여기서 생산량은 투입한 노동시간의 양에 비례한다고 가정하면 생산가능곡선(production possiblities frontier)은 아래의 그림(a) 및 그림(b)와 같을 것이다.
그림(a)
그림(b)
그런데 농부와 목장주인이 교섭에 의하여 농부는 감자만, 목장주인은 고기만 생산하기로 하되(서로 비교우위에 있는 재화만 생산하자는 것이다) 농부와 목장주인이 감자 1파운드와 고기 3파운드를 교환하기로 하였다 하자. 그러면 농부는 감자와 고기 각 3파운드를, 목장주인은 고기 21파운드, 감자 3파운드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즉 두 생산주체 모두 고기와 감자를 종전보다 더 소비하는 것이 된다. 아래의 그림(c)와 그림(d)가 이러한 교환을 나타내고 있는데, 교환후 소비점이 모두 종전의 생산가능곡선의 윗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c)
그림(d)
3) 비교우위 이론에서는 생산주체는 비교우위에 있는 제화의 생산만으로 특화하나, 일반 현실을 보면 비교우위에 있는 재화의 생산을 늘이고 비교열위에 있는 재화의 생산을 줄이는 선에서 조정될 것이다. 이 경우 일부는 다른 생산주체가 생산한 재화와 거래함으로써 생산을 줄인 재화를 취득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위치, 예를 들어 그림(c)와 그림(d)에서의 A*나 B*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일반적으로 무차별곡선(indifference curve)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생산가능곡선을 보다 매끄럽게 원점에 대하여 오목하게 그릴 필요가 있다(이것이 보다 현실적이라 하겠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면 우선 거래가 이루어지기 전의 재화 X, Y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점을 찾아보자. 일반적으로 생산가능곡선과 무차별곡선과 직접 접하는 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접점을 자급자족하의 균형점(autarky equilibrium)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과정을 나타낸 것이 그림(e)이다. 접점에서의 접선은 재화 X, Y의 가격비(Px/Py)에 해당한다.
그림(e)
다음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소비는 생산가능곡선 위의 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생산의 조정으로 생산량이 변하게 되며 따라서 접선도 새롭게 변한다. 이러한 상태를 반영하는 그림이 그림(f)와 그림(g)이다. 그림(f)는 X재가 비교우위에, 그림(g)는 Y재가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에 생산가능곡선의 형태가 반대꼴이 된다. 위 그림(f)의 새로운 생산점 P1'에서 그은 접선에 무차별곡선이 접하는 점 C1에서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우 생산주체의 경제적 효용이 가장 크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AP1'만큼 수출이, AC1만큼 수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림(f)
그림(g)
4) 문제는 비교우위 이론이 현재의 생산능력을 근거로 장래에도 항구적으로 현재 비교우위에 있는 재화에 대한 생산을 전문화 내지 특화(特化. specialization)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은 규범적 판단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규범적 판단은 선진국이 후진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것을 합리화시킬 우려가 크다. 비교우위 이론의 정당성을 Mankiw의 예와 같이 농부와 목장주인과 같이 농 수산업이라는 1차산업간의 경우로 한정하고 전문화에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도 원시적인 수준의 경우에는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으나, 1차산업과 2차산업 내지 3차산업과 같이 성질이 크게 다르고 더욱 전문화에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가 고도화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전문화가 진행될수록 부가가치의 격차가 커지게 되기 때문에 절대열위에 있는 국가가 교환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에 의해 어느 국가가 자유거래의 이익(gain from trade)을 얻게 되느냐 하는 점은 단순히 절대적인 크기뿐만 아니고 상대적인 격차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다 전문화나 특화에는 모두 지식이나 정보의 고도화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1차산업으로 전문화하는 것이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국가의 경우 전문화에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는 2차산업이나 3차산업에서 얻어지는 지식이나 정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 근래 각광을 받는 용어인 BT산업(biotechnology)의 기술을 응용한 육종기술은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1차산업국가에서 전문화하는 분야가 되어야 하겠으나 현실에 있어서는 2차산업이나 3차산업국가가 전문화하기에 훨씬 용이하다. 따라서 비교우위 이론에 의하는 한 절대열위에 있는 국가는 지향하는 전문화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전문화해야 할 영역이 축소되는 불합리에 빠지게 된다.
물론 고전적인 Ricardo의 비교우위 이론을 수정하여 ‘부존자원’(factor endowment)의 개념을 도입한 ‘헥셔-올린 정리’(Heckscher-Oh-
lin Theorem)가 통설화되고 있고, 더 나아가 부존자원이라는 개념 대신에 ‘경쟁력’의 개념을 도입하여 자유무역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기도 하나, 만일 그러한 이론이 규범적 판단에 근거하는 한 선진국이 후진국을 영구히 예속하고자 하는데 봉사할 위험성이 있다.
3. 생산가능성에 대한 판단의 기준
1) 우리는 앞서 Mankiw의 예에서 농부나 목장주인 누구나 일주일에 40시간을 생산활동에 투입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간의 거래에 있어 재화에 투입되는 시간이상이한 경우에 이를 강제적으로 수정하여 비
교우위를 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결여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은 전체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던 60-70년대의 경우, 비교우위를 논하는데 있어 선진국의 농업노동시간으로 수정하여 비교우위를 논하였던 기억은 없다. 우리 농부들이 1일 15시간을 노동하였던 경우에도 그로 인한 생산량을 선진국의 6-8시간의 농업노동시간의 투입에 따른 생산량과 단순비교하였을 것이다. 이 점을 굳이 지적하는 것은 단순비교에 의하여 거래의 이익을 파악하는 경우 거래의 이익의 크기가 자의적으로 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예를 들어 생산주체인 두 국가가 당시 그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특성에 비추어 투입되는 노동시간이 일정하고 다른 국가의 경제적 여건과 무관한 경우 비교우위를 논의하기 위한 조정작업이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때 두 국가의 생산가능곡선이 아래의 그림(h)및 그림(i)와 같다고 하자.
학자들은 이러한 그림을 이용하여 두 국가를 합한 생산가능곡선을 그림(j)와 같이 합성하고 있다. 그리고 두 생산주체가 거래로 이익
을 얻을 수 있는 범위는 그림(j)의 점선부분과 실선인 생산가능곡선과의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만일 어느 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특성이 변하여 그림(h)에서 그림(k)와 같이 상향이동하는 경우 거래로 인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범위에 변화가 생기며 그로 인해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종전에는 거래의 이익이 발생할 수 있었던 위치가 그렇지 아니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게 된다. 참고로 교역조건이란 위에서 말한 가격비에 해당한다.
그림(k)
3) 이 점을 유의하면 다음과 같은 점도 수긍할 수 있다. 만일 어느 국가의 생산요소(헥셔-올린 정리에서 말하는 부존자원이라고 보아도 된다)가 다른 국가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많아 전부를 투입하는 경우 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생산하고도 남을 수 있는데도 어떤 사정에 의해 투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마치 위의 예에서 노동시간이 다른 국가에 비하여 적게 투입되는 경우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느 생산요소가 압도적으로 많은 국가가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리는 정도에 따라서 교역조건이 변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래로 인한 이익이 변하게 되고 심지어는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될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4) 그런데다 비교우위 이론은 이론의 단순화를 위하여 생산주체를 두 국가로 국한하여 설명하고 있으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같은 종류의 재화에 대하여 경쟁관계에 있는 다수의 생산주체가 존재한다. 이 경우 거래는 절대우위-절대열위에 있는 상품을 중심으로 수출과 수입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비교우위가 문제되는 X재와 Y재 사이에서 A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X재를 B국에 수출한다 하여 B국으로부터 비교열위에 있는 Y재를 반드시 수입하는 것은 아니고 더 가격이 저렴한 C국으로부터 수입할 것이다. 물론 A국과 B국 사이에 X재와 Y재를 팩키지화하는 구속력있는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5)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에 인접한 중국을 비교하는 경우 위에서 제기한 문제점을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중국을 ‘세계의 제조공장’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잉여노동인구가 많고 그로 인해 노동임금이 아직 저렴하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정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과 같이 인구가 세계인구의 4분의 1 정도로 많은 나라가 노동집약을 요하는 특정 재화의 생산에 전문화 내지 특화하는 경우에는 전세계 인구가 필요로 하는 재화의 생산을 충분히 담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잉여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노동집약을 요하는 특정재화의 생산에 전문화를 꾀한다 하더라도 중국은 더 유리한 조건에서 생산이 가능하며 결국은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다경제 생산주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제3국으로서는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을 수입선으로 삼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를 피하여 기술(자본)집약적 재화의 생산에 전문화하려 한다할지라도 중국이 잉여라 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노동력을 우리나라보다 월등하게 많이 연구에 투입하는 경우 우리나라는 기술(자본)집약 산업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2차산업, 3차산업의 발전속도에 비추어 우리나라가 대부분의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이 커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Ⅱ. 보상이 따르지 아니하는 경제정책
1. 쌀시장 개방논쟁
1)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자유무역에 의해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에서보다 싼 값에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어 소비자잉여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소비자가 속하는 국가의 생산자의 잉여는 감소할 것이다. 반대로 수출국의 경우는 소비자는 더 적은 재화를 소비하게 되어 소비자잉여는 감소하고 생산자는 생산의 확대로 생산자잉여는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합한 총효용은 수출국이나 수입국이나 모두 증가한다. 이 점은 수요공급곡선을 이용하여 간단히 증명할 수 있는 문제이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자유무역이 장려되어야 할 것 같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쌀시장 넓게는 농수산물시장을 둘러싼 개방논쟁이 그 단적인 예이다.
농수산물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국내시장에서 수입농산물과 대체재(代替財. substitutes) 관계에 있는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농 어민의 반대투쟁은 극렬하다. 이러한 반대투쟁은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에 의하여 제기된 농 수산물시장 개방의 전단계라 할 수 있는 ‘예외 없는 관세화’와 ‘최소 (또는 현행) 시장접근’(minimum or current market access) 원칙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으며 작년 Doha에서 개최된 뉴라운드(New Round)에서 완전시장개방으로 선회하고 금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이 체결되자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반대논리는 두 가지 점에 기초하고 있다. 유치산업보호론과 식량안보론이다.
2) 본래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
gumnt)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동안만 보호 육성되면 그 후에는 보호가 없이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산업에 한하여 보호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도 보호한다는 것은 경제논리가 아니고 사회보장 차원의 문제이다. 이러한 점을 보다 철저히 하면 보호기간이 끝나 경쟁력을 가지게 됨으로써 기대되는 총미래이익의 할인액이 보호기간 동안 그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치른 총비용의 할인액과 같거나 적어도 많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을 ‘밀-베스터블 검증기준’(Mill-Bastable test)이라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공업은 유치산업으로서 보호대상이 될 수 있지만 농업은 부적당하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농 수산업의 경우는 자연적 지배를 받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우리 농촌의 현실에 비추어 가까운 기간 내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참고가 되는 것이 中東에서의 비경제논리에 의한 농업육성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국민들이 소비하는 보리의 대부분을 수입하여 왔다. 1961년을 기준으로 연간 생산량은 167,000입방톤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관개시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여 1990년에는 300만입방톤을 생산하게 되었고 그중 3분의 2 이상이 수출되고 있고 곳곳에 녹지가 조성되었다. 이는 소위 오일달러의 힘을 상징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관개시설의 건설과 유지 등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보리의 생산비가 톤당 1,000달러라 한다. 아직 오일달러가 계속 유입되는 동안에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석유가 고갈되고 오일달러의 유입이 악화되는 경우에는 그 거대한 인공수로는 사하라 사막을 지나는 거대한 파이프라인 신세로 전락하여버릴 것이 명약관화하다. 경쟁력 없는 산업을 유치산업보호라는 미명으로 계속 보호하는 폐해도 이와 같다 할 것이다.
3)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식량안보론이 등장하게 된 것인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30퍼센트 미만이고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5퍼센트도 안 된다. 그와 같은 사정 때문에 곡물 수입량은 세계 2위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도 드물다. 미국, 프랑스의 자급률이 180퍼센트라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섬나라인 영국도 110퍼센트고, 산악국인 스위스도 40퍼센트나 된다. 어쨌든 식량안보 때문에 농 수산물 시장이 개방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는 비경제적인 주장이기는 하지만 솔직한 논리로서 유치산업보호론보다는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2. 보상의 당위성
1) 이와 같은 식량안보라는 논리는 경제논리와는 별개의 논리에 의하여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논리이다. 분명한 것은 유치산업보호론에 근거하는 반대론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는 농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1차산업이 국내경제의 중추산업이었을 당시부터 종사하여 왔고 그 나름대로 국민들의 생존이나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여 왔을 뿐 아니라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보호의 당위성이 수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전면에서 産業役軍으로 등장하고 있는 오늘, 그들에게는 농업이나 수산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놓여있는 선택대상인 다수의 職業群에서 자신의 의사로 선택한 직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상이 뒤따르지 아니한 시장개방이 특정직업군에 대하여 이익을 주고 특정직업군에 대하여 손해를 입히고 있는데도 손해를 입은 특정직업군에 대하여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헌법상 보장하고 있는 재산권에 대한 침해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위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염두에 두고 ‘파레토의 원리’(Pareto principle)를 살펴보기로 한다.
앞서 자유무역에 의하여 총잉여가 증가한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와 같은 총잉여, 총효용의 극대화가 정당시되는 이론적 배경에는 파레토 원리가 존재한다. 파레토 원리란 어떤 변화가 다른 사람의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들의 상태를 더 바람직하게 해준다면 그러한 변화는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어떤 사람은 전보다 나아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보다 나빠지는 변화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파레토 원리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안들이 제기되었는데 예를 들면 ‘칼도 기준’(Kaldo criterion)을 들 수 있다. 칼도 기준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기준이기도 한데 이에 의하면 이득을 본 사람들이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가상적으로’(hypothetically) 보상을 할 수 있다면 그러한 변화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즉 어떤 정책변동으로 인하여 이득을 본 사람들이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가상적으로’ 보상을 하여준 뒤에도 계속 이득을 보고 있다면 그와 같은 정책변동으로 인하여 아무도 나빠지지 않은 한편, 최소한 한 사람은 전보다 나아지므로 그 정책변동은 명백히 파레토 개선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 여기서 우리는 이득을 본 사람들이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그 손해를 단순히 ‘가상적으로만’ 보상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보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주장할 근거가 생긴다. 그리고 보상에 대한 궁극적인 부담자는 ① 효용이나 잉여가 증가한 소비자와 ② 우리나라의 시장개방에 상응하여 호혜적으로 개방된 외국시장에 수출이 가능하여짐으로써 수출국 생산자로서 생산자잉여를 누리는 생산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국가는 그러한 보상이 실현되도록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할 의무를 진다 하겠다.
현실적인 보상은 하지 아니한 채 정책의 타당성만을 확보하기 위하여 칼도 기준을 원용한다는 것은 생산과 소비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에서 단순히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구하고, 소비자라는 한 軸의 효용이나 잉여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자유무역을 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시장이 개방되어야만 한다는 논리로 수입재와 대체재 관계에 있는 국내 생산자에게 보상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결코 당위성을 확보할 수 없다 하겠다.
4) 필자는 앞에서 국가에게 조정자로서의 의무를 부담시키고 현실적인 보상의무를 지우지 아니하였는데 이는 국가가 직접 보상을 하는 것은 WTO체제하에서 허용되지 아니하는 보조금지급 등으로 평가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산권 침해에 대하여는 국가가 보상하여야 한다는 헌법상의 보상의무와 헌법보다 하위법이기는 하지만 조약 등에 대한 준수의무를 부담한다는 정신에서 법률보다는 상위법 단계에 있다고 보여지는 국가간 의무 사이의 충돌을 방지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국가가 조정의무를 부담한다는 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다.
농 수산물 시장개방에 대한 농 어민 등의 반대를 단순히 職域利己主義라고 몰아 부치고 다수결의 논리로 이를 풀어가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현실적인 보상이 뒤따르지 아니하는 소비자의 효용이나 잉여의 감소행위는 일종의 收用類似行爲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유치산업보호론이라는 덜 다듬어진 이론의 문제점을 극복할 뿐 아니라 비교우위라는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시장개방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피해 농 어민의 피해의식을 치유함으로써 시장개방을 둘러싼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국가의 조정의무를 필요로 하는 기간은 유치산업보호를 필요로 하는 기간 정도로 한정하여야 할 것이다.
Ⅲ. 일방적인 이익 공여정책
우리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특정 직역에 부당한 이익을 창출시키면서도 그와 같은 이익의 보유를 허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이익으로부터 법인세나 소득세 등을 납부하기는 하겠으나 초점은 이를 차감한 이익 부분이라 하겠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청정환경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백화점이나 수퍼마켓 등에서 종전에 무상으로 제공하던 비닐봉지를 값을 받고 팔도록 하고 있다. 백화점 등으로서는 종전에 무상으로 제공하던 것을 유상으로 팔고 있으니까 이중으로 이득을 보는 셈이다. 청정환경의 취지를 철저화하기 위해서는 백화점 등으로부터 이러한 이득을 회수하여 환경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예를 들면 탈세방지라는 명분으로 카드를 사용하지 아니한 기업에 대하여는 소득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처리하거나 사용비용을 세법상 비용으로 처리하여 주지 않는 방법으로 사실상 카드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반면 카드회사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이는 정
부가 카드회사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큰 문제는 탈세와는 전혀 무관계한 성실신고와 납세를 하고 있는 기업들에게까지 카드사용을 강제함으로써 현금으로 구매하는 경우에는 거래관행에 따라 할인을 받거나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는(카드가맹점이 카드회사에 지불하는 카드사용액의 3-5퍼센트에 달하는) 카드사용 수수료에 상당하는 금액을 기업으로 하여금 부담하게 하여 기업의 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까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부당한 재산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필자는 15대 국회의원 생활을 할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일원으로서 이 점을 강력히 지적한 바가 있다. 성실신고를 담보할 수 있는 수준의 기업들에 대하여는 단순한 비용처리가 아니라 수수료에 상당하는 금액을 직접 환급하여 주는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본다.
(법제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