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변호사
서울 서초동 법원 근처에 있는 이석연 변호사 사무실은 손때 묻은 집기들과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가득 차 있는 검소하고 조촐한 분위기였다. 법제처 후배들을 반갑게 맞이한 이 변호사는 시종 질문보다 한 발 앞서 답변을 이끌고 나가면서 격의 없고 편안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이석연 변호사는 1954년 4월생으로 전북 정읍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그는 중학교 졸업 6개월만인 1971년 7월 검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고, 그 해 예비고사도 통과하였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기에는 너무 어렸던 그는 대학진학을 미루고 금산사 심원암에 들어가 암자생활로 고교생활을 대신했다. 이 변호사는 당시 독서에 목말랐고 1년 8개월 동안 세계문학전집과 수필집 등 200여권을 읽었는데, 이 때의 독서가 이후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한다. □ 법제처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 1979년 12월에 제23회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나서 1980년 11월에 법제처를 제1지망으로 선택하여 발령을 받았다. 1981년 5월, 그간 계속 연기하여 왔던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휴직한 후 정훈장교로 군복무를 이행하였다. 1984년 8월에 법제처로 복직하여 법무부 건설부 소관 법령 담당 법제관실에 근무하면서 이전부터 준비해오던 사법고시에 응시하여 1985년 11월에 최종 합격하였다. 이후 법제처 공무원으로서 휴직한 상태에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고 다시 법제처로 복귀하였다가 1989년 5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부에서 지낸 기간이 많긴 하여도 거의 10년 동안을 법제처 인으로 살아 온 셈이다. □ 법제처에 근무하던 시절 어떤 점이 좋았는가 요즘에는 법제처 인원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70∼80명 정도였기 때문에 서로 어떻게 사는지, 하루 동안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잘 알았다. 다른 부처와는 달리 엄격한 계급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상하좌우가 모두 잘 어울렸다. 또한 법제처의 학구적인 분위기는 법학을 연구하고 행정실무를 쌓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법령 심사 경험은 이후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떤 법령이라도 자신감 있게 대할 수 있는 실력으로 직결되었다. 대개 변호사들을 보면 소송과 관련된 조항만을 들여다 볼 뿐 법률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거나 체계적으로 분석할 줄을 모른다. 사법연수원에서도 법제실무 수업이 없으니, 법률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이에 담긴 의미를 깨우칠 수 없다. 사법연수원 등에도 법제실무 수업을 만들어 법제처 직원들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강연한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 법제처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법제처는 정부가 입안하는 법령에 대하여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하는 곳이다.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법제처는 현재와 같은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남아야 한다. 또한 기관 위상은 현재의 차관급에서 과거와 같이 장관급 기관으로 복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각종 법령 심사와 관련하여 위헌 소지가 있거나 상하 법체계가 안 맞는 부분들에 대해서 법제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행정부 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특히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경우에는 국회에서 심의 의결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행정편의 위주로 만들어지지 않도록 법제처가 정부 내 야당으로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 다양한 사회활동 중 가장 애착을 가지는 부분은 전공은 형사소송법이었지만 공익소송을 통해서 변호사의 공익적 사명을 다하고 싶다. 헌법재판소에서 일할 때 현행법에 위헌요소가 너무 많음을 알고 직접 헌법소송을 내고 싶어서 1994년 5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본격적으로 위헌소송을 담당하게 되었다. 언론에서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으로서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인 모습을 많이 부각하였지만 오히려 시민단체 안에서는 보수적인 인사에 속한다. 시민운동을 진보세력만이 독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고, 결국 논의의 초점은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환경이라든지 소비자 복지 노인 문제 등 현대에 나타나는 인권 문제는 변호사의 고도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공익소송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이다. 개인적으로 능력도 없고 배경도 없어 억울한 사람이 많은데 필요한 경우에는 사재를 털어 공익소송을 진행하였다. 제대군인가산점제도의 경우 개인적인 비용을 들여가면서 위헌판결을 받아놓고도 많은 항의를 받았는데, 내가 군대 안 갔다 온 사람이었다면 큰 일 났을 뻔 하였다. □ 바쁜 와중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운동이나 취미활동이 있다면 규칙적으로 하는 운동은 없고, 다만 주말에 등산을 하곤 하는데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변호사 개업 이후에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겨 다행이다.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중국 시안으로 당나라의 기운이 곳곳에 어려 있는 그 곳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유물 유적을 발견하는 고고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지난번에는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몽고에 갔는데 칭기즈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역사현장들을 인상 깊게 둘러보았다. 세계사의 영웅 중 칭기즈칸과 알렉산더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이 변호사는 후학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도 소설 “칭기즈칸”과 “알렉산드로스”를 우선 꼽았다. 인터뷰 시간이 오후로 잡혀 함께 식사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이변호사께 본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청국장과 국수를 기약하면서 자리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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