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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
  • 구분수상(저자 : 장덕조)
  • 등록일 2009-01-01
  • 조회수 348
  • 담당 부서 대변인실
忙 中 閑 張 德 祚 전에는 몸이 몹씨 약해서 일년에 한번쯤은 꼭 병원에 입원을 했다. 늑막염에 복막염, 「일레우스」란 이상한 병을 앓은 일도 있다. 그러나 중년을 넘으면서 어떻게 병줄이 놓이고 건강이 유지된다 했드니 갑자기 몸이 나기 시작했다. 오륙년전에 만났던 사람조차 눈을 껌벅 껌벅하면서 아래 위를 훑어 보다가는 소리를 내어 웃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되셨어요 」 「내가 아주 뚱뚱해 졌지요 」 「네, 딴 사람인가 했다니까요.」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말은 한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비슷하다. 「그렇게 몸이 나는 것을 보니 이제 편안해 지셨나 봅니다. 아기들도 다 자랐지요 」 그러나 실상 나는 편안하지가 않다. 아이들은 다 자랐는데도 끊임없이 일이 있는 것이다. 딸들이 시집을 가고 아들이 장가를 드니 사위가 생기고 며느리가 들어와 내가 관심을 두어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 손주들도 일꺼리다. 원고를 써야 한다. 지금 신문의 연재소설만 넷, 거기 잡지연재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비만해지는 것은 결코 몸이 편안해서가 아니다. 편안하기는 커녕 어떤때는 너무도 바쁜 몸을 한탄도 하고 좀 한가한 시간 있었으면 하기도 한다. 세속적인 일체의 번잡에서 도피하여 문자 그대로「한가(閑暇)」를 가질 수 있다면 - 나는 오래 그같은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원망(願望)과도 같이 간절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좀체로 실현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와같은 연령의, 나와같은 환경속에서 봉건적인 생활을 해온 여성은 이「한가한 시간」이라는 것을 부덕시(不德視)하는 경향이 있다. 「유한부인(有閑夫人)」이라던지 「유한마담」이라던지 하는말을 들어도 한때 유행했던 자유부인(自由夫人)이란 말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사회의 양속(良俗)을 흐리게 하는듯한 인상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휴양을 좀 취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가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구나. 그 전처럼 병이라도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면 마지못해 쉬게 되겠지만……」 나는 이같은 이야기를 친구 H에게 했다. H도 몹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여성이다. 그러나 H여사는 당장에 나의 생각을 반박해 왔다. 쉰다는 일이 어찌 부덕(不德)한 일이겠는가. 자유롭고 조용히 쉴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쉰다는 것이 미안한 일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조용히 쉬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에 대해서 불성실한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은 마음의 양식을 섭취할줄 모르니까요」 하고 그는 말했다. 며칠후 H여사는 차표 두장을 가지고 찾아 왔다. 「형님, 떠나십시다」 「어디루 」 「여기 저기」 「일꺼리가 밀려 있는데--」 「일은 끝이 없어요, 일어서세요」 「그래두」 「일에만 휘둘려 산다는 것은 인간성의 멸시(蔑視), 인간성의 부정(否定)이 예요, 훌쩍 떠나 보십시다」 하긴 일만을 생각하고 앉았다가는 언제 일어 서게 될런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H를 따라 나섰다. 대구, 동화사, 해인사. 해인사는 온통 녹음에 쌓여 있었다. 노앵(老鶯)은 목이 쉬고 변함없는 바람소리만이 우수수 소낙비 소리 같았다. 절로 올라가는 어구에는 꾕과리와 장고를 두다리며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고 돌아간다. 모두 술에 취해 있는것도 같고 녹음의 운기에 머리가 돌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이도 보였다. 우리는 길가에 버려진 나무막대기를 주어 짚고 정신없이 산길을 걸었다. 어디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계곡이 있고 아람들이 나무가 쓸어져 있고 암자가 나타나고「부도」가 눈앞에 보였다. 우리도 꿈을 꾸는 듯, 녹음의 운기에 머리가 돌아버린 듯 무리져 피어있는 새하얀 꽃들을 한옆으로 바라보며 발길 닿는대로 걸어갔다. 가다가는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 보았다. 하늘도 푸르고 산도 언덕도 들도 계곡도 오직 푸르기만한 가운데 눈같이 하얀 구름이 한송이 우연히 흘러가고 있었다. 여름구름의 아름다움, 그래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돌같이 묵연히 수해(樹海)를 내려다 보고 다시 흰구름을 쳐다 보았다. 말을 할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옆에 앉아있는 친구의 얼굴조차 쳐다 볼 필요가 없었다. 나혼자 살고 생각하고 혼자 서글퍼하고 혼자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이라면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아부가 없고 가식이 없고 사교(社交)가 있을 수 없는 시간, 이것이야말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공덕이 아닐까. 우리 말문은 대구 객사에 돌아온 뒤에야 열렸다. 「형님, 우리 해인사에 가서 무얼 보았지요 」 「글세」 「절 구경 했던가요 」 「절 」 「유명한 팔만대장경은 어디 있었어요 」 「몰라」 「그러니 우리가 그걸 못보고 왔구먼요」 우리는 바보처럼 웃었다. 동화사에 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이기 싫은 날은 호텔에서 진종일 낮잠만 잤다. 그리고는 「객주에서 우리를 이상한 여자들로 알겠네, 밥 사먹고 낮잠만 자고 있으니」하고 함께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나그네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그네의 눈을 통해 그 기억에 아로 새겨 지는 것은 결코 그 땅의 보편적(普遍的)인 사상(事象)이 아니다. 나그네의 머리속에는 그가 본 모든 경물(景物)가운데서 난데없는 것, 엉뚱한 일들이 선명하게 남아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이 그 본토인(本土人)들의 무관심하게 여기는 사실들을 가장 기이(奇異)한 것으로 인상에 남기는 것처럼 우리가 열흘동안의 여행에서 기억하는 것은 푸른 하늘, 보리밭, 어느 산모퉁이 무덤앞에서 비석을 세우며 울던 여인, 여사의 낮잠에서 깨어나 문득 듣던 비소리 그런것 뿐이 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여행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서울에 돌아오니 일이 밀려 있었다. H도 그렇다 한다. 그래도 나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후회를 하기는 커녕 H의 말처럼 「한가한 시간」이란 인간의 성장에 무엇보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히려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