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결정
- 구분특집(저자 : 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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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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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637
임금의 결정
박찬주(前 법제처장)
차 례
Ⅰ. 임금결정의 구조
1.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서 이루어지는 임금 구조
2.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임금 구조
Ⅱ. 노동3권으로부터의 자유
1. 기회비용
2.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몫의 산정
3. 노동3권의 보장
4. 기업가 지위에 대한 위협
Ⅲ. 이해의 충돌
1. 성장과 분배
2. 취업과 실업
3. 임금격차
4. 차별
Ⅳ. 사회적 합의를 통한 조정
1.임금결정에 대한 수요와 공급측 요인의 요약
2. 임금결정의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3. 참고자료
Ⅰ. 임금결정의 구조
1.수요와 공급의 균형에서 이루어지는 임금 구조
완전자유경쟁시장에서의 물가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지면서 결정된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되는 가격을 균형가격(均衡價格. equilibrium price)이라 한다. 그렇다면 물가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임금도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서 결정이 된다. 이 수준의 임금을 시장청산임금(市場淸算賃金)이라고 부른다.
기업의 노동에 대한 수요는 노동 한 단위를 생산에 추가로 투입할 때 기업에 가져다주는 수입과 노동의 가격인 임금과를 비교하여 결정하게 된다. 노동의 한계생산물(marginal product)은 물적 개념인 바 노동의 한계생산물에 시장의 생산물가격을 곱한 것을 한계생산물가치(限界生産物價値. value of marginal product)라 부른다면 기업의 노동에 대한 수요곡선은 바로 이 한계생산물곡선으로 나타난다 할 수 있다.
2.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임금 구조
가.완전경쟁시장에서의 한계생산물의 가치
1) 위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노동에 대한 수요가 노동의 한계생산물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노동의 한계생산물가치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道德的解弛. moral hazard)와 관련되고 있어 쉽게 해결되지 아니한다.
순수한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란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전혀 존재하지 아니한 상태를 전제할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에 대한 완전경쟁시장이란 노동을 수요로 하는 기업은 언제나 필요한 만큼의 노동을 균형가격을 지급하고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필요노동력의 확보나 잉여노동력의 퇴출에 자유롭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만일 균형상태에서 결정되는 임금을 받고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되는 노동자는 해고할 수 있어 노동자들이 고용주(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기업소유자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고도 보인다)의 눈을 피해 적당히 일을 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일 수 없다. 따라서 노동에 의하여 생산되는 한계생산물의 가치는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결정되는 이상적인 가치라 할 수 있다.
2) 만약 기업이 고임금을 지급할 때 순생산성이 증가한다면 고용주는 노동자가 과잉인 상태라 하더라도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 것이 더 이익이 될 것이다. 이는 노동력의 생산성이 임금삭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여 생산단위당 전체의 노동비용은 오히려 증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고용주는 총노동비용이 최소화되는 수준에서 임금을 지급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임금을 효율임금(效率賃金. efficiency wage)이라 하는데, 효율임금은 시장청산임금보다 높은 것이 보통이다. 이는 임금이 증가하면 노력도 증가한다 는 임금의 태만유발론(shirking view of wages)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이 한계생산물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바이지만 만일 임금이 증가하면 노력도 증가한다 면 임금이 한계생산물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된다. 결국 임금과 한계생산물가치는 상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임금 상승으로 인한 노력의 증가분이 실제로는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것의 회복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나.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의 한계생산물의 가치
1) 그러나 노동에 대한 수요가 날마다 필요한 노동량을 공급받는 1일노동의 형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일정한 기업의 형태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있어 잉여노동력이 존재하더라도 이를 자유롭게 퇴출시키는 것이 제한되고, 설사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있지 아니하더라도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고용주가 노동이 제공되는 현장에 대하여 감독하는 것이 불가능하여지기 때문에, 자연히 완전경쟁의 경우에 비해 노동의 한계생산물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이 떨어지고 있는 한계생산물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용주로서는 그 도덕적 해이가 심각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면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는 상황하에서 파악되는 한계생산물가치를 최선의 한계생산물가치라고 전제하고 임금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도덕적 해이의 존재를 부인하려 들 것이고, 또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 한계생산물가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가려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는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결정되는 균형가격보다 높은 가격의 임금을 주고 노동을 공급받는다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개별기업 차원을 넘어 산업 전체로 확대하는 경우에는 노동의 공급곡선 자체의 이동이 일어난다 할 수 있다.
2) 고용주는 애당초 한계생산물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 해이를 가려낼 수 없게 되자 임금결정에 있어서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경고적 기능을 추가하고 경고를 무시한 근로자를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임금결정에 있어서의 경고적 기능은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이용하는 것으로써, 균형점에서 결정되는 임금수준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노동을 공급하고자 하는 노동자에 비하여 고용되는 노동자는 적기 때문에 기업이 그 차이를 이용하여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는 노동자는 퇴출시키겠다는 경고를 발하여 고용되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그림(a)에서의 AB 구간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 구간은 고용된 노동자와 경합관계에 있는 노동자(실업자)라는 의미에서 경쟁집단(競爭集團. competing group)이라 부를 수 있다. 한편 BC 구간은 제시된 임금으로는 취업을 바라지 아니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발적 실업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용된 노동자와는 무경쟁집단(無競爭集團. noncompeting group)에 해당한다.
이러한 임금결정 방법이 보울즈(S. Bowles)와 긴티즈(H. Gintis)의 대항적교환이론(對抗的交換理論. contested exchange theory)으로 효율임금이 지급되는 근거인 임금이 증가하면 노력도 증가한다 는 기대가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에 의하여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가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부의 성공밖에 가져오지 못하였다. 노동자들의 조직이 견고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은 그 힘을 빌어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는 노동자에 대하여 가지는 고용주의 퇴출 기능을 현저하게 약화시킬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노동자들이 기업의 퇴출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한계생산물가치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게 되고 노동자들은 떨어지기 전의 한계생산물가치 수준으로의 회복에 임금수준의 상승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듭된 이러한 과정이 사회적으로 만연될 경우 기업의 영업의 자유는 노동자들의 조직에 의해 형해화(形骸化) 되어버리게 된다.
다. 노동생산성
근래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이 노동생산성을 앞지르고 있다는 통계들이 잇따르고 있다. 제조업의 경우가 가장 현저한데, 예를 들어 금년 1분기 제조업의 임금이 노동생산성의 4배 가까이 된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 제조업의 임금격차가 13배나 된다거나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을 시간당 임금으로 나눈 단위노동비용의 증가율이 지난 해 5.9%로(이는 재작년의 단위노동비용에 비해 5.9%가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1.3%, 일본의 -4.5%, 대만의 -8.8%로 모두 감소세로 돌아선 것과 대비된다는 우울한 보고도 있다.
생산성(生産性. productivity)은 보통 생산량을 각 생산요소의 투입량으로 나눈 몫으로 생산요소 1인당 생산량의 크기를 나타내는데, 평균생산력(average productivity)이라고도 부른다. 노동생산성은 투입되는 생산요소가 노동인 경우의 생산성을 의미한다.
평균생산력이 한계생산력과 일치하는 곳에서 한계생산력이 0이 되는 사이가 기업의 생산가능 영역이다. 이 관계를 그림(b)를 통하여 설명하여 보자.
그림에서 제1단계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단계이다. 그러나 수확체증의 정도가 둔화되므로 평균생산력이 한계생산력과 일치하는 점은 반드시 존재한다.
제2단계에서는 노동 1단위당 기계사용량이 점점 감소하여 노동이 상대적으로 과잉되어 노동자 1인당 기계의 비율, 즉 노동의 자본장비율이 급격히 감소됨에 따라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이 감소하게 된다. 그리고 제3단계는 가변요소의 한계생산력이 (-) 값을 지니는 영역으로써 총생산량이 감소하게 된다.
한편 고용주의 수입은 평균생산력에 제품의 가격을 곱해 얻어지는 금액이다. 그런데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을 앞지른다는 것은 고용주가 생산활동을 통해 획득하는 이익, 즉 이윤의 크기를 제한하는 기능을 한다. 이는 노동생산성을 앞지르는 임금상승은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런데도 이와 같이 노동생산성을 앞지르는 임금상승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임금결정과정에 도덕적 해이가 개입함으로써 정상적인 임금결정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Ⅱ. 노동3권으로부터의 자유
1. 기회비용
기회비용(機會費用. opportunity cost)이란 일정량의 생산요소를 이용하여 두 종류의 재화, 예를 들면 X나 Y를 생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X재 한 가지만 생산한다면 다른 재화 Y를 생산하는 기회를 희생하여야 한다. 이 경우 X재의 생산량을 희생된 Y재의 생산량으로 나타낸 것을 X재의 기회비용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X재의 생산에 소요된 생산요소의 양 또는 생산요소의 가치로 측정된 것을 그 재화의 실질비용(real cost)이라 한다.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은 교환의 기본원칙인 비교우위이론(比較優位理論. comparative advantage theory)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흔히 비교우위이론을 무역시장 개방을 위해 동원되는 선진국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이론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비교우위이론은 한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산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론이다.
고용주가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그 자금을 다른 투자대상에 투입하여 벌어들이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 고용주가 투입한 자금을 다른 사업에 투입하였더라면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은 기업에 현재 투입되어 벌어들이는 이익에 대한 기회비용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기예금의 이자율이 연 10%라 할 때 고용주가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정기예금에 들었더라면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이자를 포기하는 셈이다. 이 경우에는 투자를 위하여 포기되는 이자 상당액이 기회비용이 된다 할 수 있다.
한 투자대상에의 투자를 위하여 포기되는 대상은 하나에 그치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기회비용이라는 것도 다양할 수 있는데, 비교우위를 판정하는데 있어서는 포기되는 것 가운데 최선의 것, 다시 말하면 차선(次善. the second best)이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최소한의 전제마저 서지 않는다면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무용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고용주에게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전제는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문제를 푸는데 있어 출발점이 된다는 점은 앞으로의 전개에서 밝혀질 것이다.
2.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몫의 산정
가. 임금기금
앞서 설명한 한계생산물가치라는 개념은 임금결정에 관한 현재의 통설이라 할 수 있는 한계생산력설(限界生産力說. marginal productive theory)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종전에 존재하였던 임금에 관한 이론을 살펴보면 임금생존비설, 임금기금설 등 다양한 결정이론이 존재한다.
최초의 결정이론은 임금생존비설(賃金生存費說. subsistence theory of wages)인데 임금철칙설(賃金鐵則說. the iron law of wages)이라고도 부른다. 이 이론에 의하면 근로자는 임금으로 자기 및 가족의 생활유지에 필요한 생존자료를 획득하는 것이므로 결국 임금은 노동력의 생산비, 즉 생존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데, 이 입장에서는 국가경쟁력의 강화를 위하여 임금의 극소화를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임금생존비설에 대한 반동으로 마르크스(K. Marx)에 의하여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 labor value theory of wages)이 주장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임금생존비설에서는 노동공급의 사정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면서 임금수준이 생존의 최저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 인식되면서 학자들의 관심은 노동수요적 측면으로 전환되었는데 거기서 나타난 것이 밀(J. S. Mill)에 의해 주창된 임금기금설(賃金基金說. wage fund theory)이다. 이 이론에서는 어느 한 시점에서 노동자의 임금으로 지불될 수 있는 부(富)의 총액 또는 기금(a sum or fund of wealth)이 정해져 있고, 임금수준은 이 임금기금을 근로자수로 나눈 몫으로 측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기금은 고정적인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이 점은 밀도 인정한 바이지만 시니어(N. W. Senior)가 생산성 개념을 보충함으로써 명확하여졌는데, 어쨌든 노동자들은 생산력의 향상을 통해 자신의 임금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 이론은 실질적으로 한계생산력설과 거의 같다.
임금기금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임금기금’은 사회적으로 또는 산업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또는 산업적 임금기금이라 할 수 있는가 하면 개별기업의 차원에서 임금기금이라는 의미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임금기금’이라는 개념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의 논의의 전개에 있어 필요한 경우 임금기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필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나. 기업 이익 산출에 있어서의 발상전환의 필요성
1) 회계학적으로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은 제조업의 경우는 제조비용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그 이외의 기업에 있어서는 수익에서 공제되는 영업비의 일종인 인건비로 취급되며 거기에서 영업외비용 등을 공제하고 난 나머지로 기업의 이익이 결정된다(물론 특별이익이나 특별손실 등까지 고려한 나머지가 되겠으나 편의상 이 점은 무시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고용주의 몫을 회계처리의 결과로서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수준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고용주가 지금 자금을 투입하는 기업에서 기회비용에도 못 미치는 이익을 올리고 있다면 고용주는 언제라도 투입된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길이 보장되고 있지 아니하다면 고용주는 투자를 하려들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투자액에 대해 확보되어야 할 최소한도의 기회비용을 먼저 예정한 다음 노무비나 인건비는 물론이고 다른 성질의 비용을 지출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하면 회계학적으로는 고용주에게 돌아가는 몫이라 할 수 있는 이익, 즉 이윤은 회계학적으로는 수익에서 인건비 등 비용을 공제한 나머지라는 수동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회비용의 관점에서는 고용주에게 적어도 기회비용 정도의 이익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회계처리에 선행하는 능동적, 사전적(事前的)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명백히 하고자 하는 점은 고용주에게 돌아가는 몫이 회계처리에 선행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임금은 한계생산물가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의 주장은 임금이 한계생산물가치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는 임금결정의 원칙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는 한계생산물가치에 따르지 아니한 임금결정의 원리에 제약을 가하는 사정을 제거할 수 있는 경영권의 확보를 위한 제언이기 때문이다.
2) 다만 여기서 고용주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몫을 어느 정도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된다. 기업이 최초로 출발할 당시에는 그 투자액의 크기가 비교적 일정하였고 고용주의 범위도 명확하였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기업의 가치가 크게 변동하고 특히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고용주에 해당하는 주주들의 변동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주주들이 고용주라는 인식은 관념에 그쳐버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노동자들이 도덕적 해이의 길로 나가는데 있어 주주들이 거의 제동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고 기회비용의 개념에 의해 보장되어야 할 고용주의 몫이라는 측면까지 퇴색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그러한 상황이야말로 더욱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할 수 있다.
여기서 참고할 것은 토빈의 q투자이론(Tobin's q theory)이다. 토빈(J. Tobin)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실물자본과 동일한 실물자본을 신설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대체비용(代替費用. replacement cost)이라고 정의하고 기업의 시장가치를 총발행주식의 시장가격으로 가정하는 한편, 총발행주식의 시장가격을 실물자본의 대체비용으로 나누어 산출되는 비율을 q라 할 때 그 의 값이 1보다 크면(q > 1) 투자가 이루어지고 1보다 작으면(q < 1)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주주들은 자신들의 투자액에 대한 기회비용을 ‘토빈의 q’에 의해 결정하려고 할 것이다. 필자의 기회비용이라는 기준은 ‘토빈의 q’를 자신들이 보유하는 주식의 시가를 기준액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대체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주주들은 이 정도의 기회비용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투자액을 회수하려 들 것이다. 물론 이러한 회수결정은 개인별로 이루어질 것이지만 이 의사결정이 집단화되는 경우에는 기업의 가치가 저락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피해는 주주만이 아니고 노동자나 채권자 모두에게 미친다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용주의 투자에 대한 기회비용의 보장을 강조하는 것이 노사관계에서 부당하게 노동자에게 치우친 이론으로 폄하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3) 필자의 입장도 큰 틀에서는 임금기금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다만 필자의 주장이 종전의 임금기금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종전의 임금기금설은 임금기금이라는 가상적인 기금을 먼저 예정하고 거기에서 임금기금을 노동자의 수로 나누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산정되는데 비하여(일종의 선재적(先在的) 개념이다) 필자는 위에서 설명하듯 먼저 기회비용을 산정하고 이 기회비용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산정된다는 것으로, 일종의 순환론적 성격을 띄지만 기업의 이익에서 이 기회비용 상당을 공제한 나머지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임금기금이라고 보는 것이다(일종의 잔여적(殘餘的) 개념이다).
3. 노동3권의 보장
가. 제한이 없는 노동공급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헌법상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되고 있는데, 흔히 노동3권이라고 약칭되고 있다. 헌법이 노동3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는 사용자(고용주)와 대등한 입장에서 임금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법률적 뒷받침을 가지게 된 것이다. 노동력이 생산요소의 하나인 이상 임금이 수요와 공급에 관한 일반원칙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데도 헌법적 개입을 하게 된 것은 노동시장이 애당초부터 완전경쟁시장과는 동떨어지고 있었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산업발전의 과정을 보면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어느 나라나 농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러한 농업위주의 사회에서는 농업에 과잉인구가 투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한계생산력이란 0(zero)이거나 거의 0과 동일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거나 오히려 (-)(minus) 수준이었다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은 농업에 종사하는 이러한 한계생산력이 0(zero)인 노동자를 도시로 이동시켜 공업, 특히 제조업에 종사시킨다 하더라도 지급하는 임금은 생존비로서도 충분하였다. 즉 임금인상을 수반하지 아니한 채 무한한 노동공급이 가능하였으며 이것이 자본가들로 하여금 자본축적을 가능케 하였다. 이러한 이론이 루이스(W. A. Lewis)에 의해 대표되는 무제한노동공급이론(無制限勞動供給理論. unlimited supply theory of labor)이라 하는데, 이 상태에서 임금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 논리에 불과하였다.
나. 노동3권의 태동
그러나 산업혁명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고 무제한으로 공급하여 주던 농촌의 노동력이 점차 고갈하게 되자 추가적인 노동수요에 대해 임금이 서서히 상승하기는 하였으나 이 때는 이미 자본가들이 자본을 어느 정도 축적한 상태이었기 때문에 고용주는 이러한 축적된 자본을 배경으로 임금교섭에 있어 노동자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시장에서는 출발단계에서부터 이미 완전경쟁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본가 우위현상의 심화와 이와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각종의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급기야는 공산주의운동이 태동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시켜야 했고 국가는 노동세력을 건전한 방향으로 인도할 필요가 있었다. 노동3권의 보장은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4. 기업가 지위에 대한 위협
가. 노동자 지위의 변화
모든 노동자들에게 공통된 현상은 아니지만, 오늘날 자본가는 착취자, 노동자는 착취당하는 자라는 등식은 차츰 파괴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식노동자의 출현으로 블루 칼러로 대표되던 노동자계급이라는 등식도 허물어지고 있다. 이미 노동자들 중에는 영세규모의 자영업자의 수입을 뛰어 넘어선 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대기업 노동자들일수록 그러하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에서 노동자는 타인에게 고용주에 의해 고용되어 고용주를 위하여 노동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 착취를 당하는 자라는 관념과는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
나. 노동자의 경영간섭
1) 노동자의 경영참여 문제가 노동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오랜 파업 끝에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 의하면 노동자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경영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는 폐업은 물론이고 다른 회사의 통합이나 국 내외에서의 새로운 사업장의 설치, 신(新)차종의 개발이나 구(舊)차종의 단산 등 어느 것이나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노조가 경영참여할 수 있는 대상은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에 대하여 법원은 일관되게 “경영권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한 취지에서 노사간에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을 ‘합의’에 의해 추진하기로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하더라도 협약된 ‘합의’를 ‘협의’로 좁게 해석하는 방법을 통해 사용자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고용주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서는 노조의 동의를 얻기로 협약을 맺었다 하더라도 이론적으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조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노동자의 경영참여에 의해 최악의 경우 기업이 망하더라도 노동자로서는 자신의 직장을 잃는다는 것 말고는 달리 손해를 보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달리 손해를 보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노동자에게 무해무득(無害無得)하다.
그러나 고용주의 입장은 다르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로 인하여 기업의 수익창출에 심각한 불이익이 초래되거나 최악의 경우 기업이 망하게 되는 경우에 고용주는 자신이 투입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의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고용주에게 유해무득(有害無得)이다.
다. 영업의 자유
1) 기업에서 고용주와 노동자가 가지는 지위의 근본적 차이는 기업이 실패하는 경우 고용주는 투입한 자본을 잃게 되지만 노동자는 잃게 되는 자본을 투입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점이다. 고용주에게 주어지는 경영권이란 고용주의 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특성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다 고용주와 노동자는 기업의 경영에 대하여 가지는 기본적 시각이 현저히 다르다.
기업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 기업의 생존과 번영에는 변화의 위기를 감지하고 대처하기 위한 전략적 변곡점(戰略的變曲點. strategic inflection point)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전략적 변곡점에서는 과거의 효과적인 전략이나 과거의 자료를 통한 분석보다는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유는 현대자동차의 단체협약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노동자 자신에게 배분되는 임금의 수준을 높이고 자신의 신분에 대한 안전의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경영참여하는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입장이란 극단적인 위험회피적일 수밖에 없다(risk-avert). 이러한 성향은 기업의 성패가 본질적으로 도전정신 내지 기업가정신(entrepreunership)의 유무에 의해 판가름나는 자본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경영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도전에 대한 적기(適期)를 놓쳐버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런데다 전문적 경영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점들은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기업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줄 위험성이 적지 아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경영참여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발생하지 아니하였을 기업이 입는 불이익을 어떤 형태로든 노동자가 소유자와 분담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아니하는 한 경영참여는 기업에 불이익만 줄뿐 실익은 거의 없는 것으로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2) 우리 헌법에서는 노동3권에 대해서는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영업의 자유에 대해서는 직접 규정하고 있지는 아니하다. 헌법학자들은 영업의 자유를 헌법에서 기본권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에서 파생하는 자유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각종 결정에서도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이 다루고 있는 사안들이란 대개 인 허가와 관련된 것들로서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같이 소유자(고용주)의 경영권에 대한 제약을 가하는 사안에 대한 것들은 아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본질적으로 고용주의 재산권행사에 대한 제약이다. 따라서 고용주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경영권은 헌법 제23조의 ‘재산권의 보장’이나 기본권보장의 포괄규정인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 등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도출되는 ‘영업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파악해야 한다. 즉 영업의 자유는 우리 헌법상 기본권의 하나이다. 고용주의 경영권 행사는 영업의 자유를 통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3권에 대한 보장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크게 들려도 영업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헌법 규정상의 강약의 차이에서 근거한 것이라면 우려할만한 헌법해석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노동자의 임금결정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점이 있다. 그 하나는 고용주가 투하한 자본에 대해서는 그 투하자본을 안전하게 다른 곳에 투자하였더라면 벌 수 있는 이익, 최소한의 기회비용에 해당하는 이익 정도는 보장하도록 고용주의 경영활동에 제동을 걸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고용주는 경우에 따라서는 투하한 자본을 모두 날릴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 투하한 자본을 날릴 수 있는 위험에 대한 확률이 문제되는데, 어쨌든 이 두 가지 점을 고려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경영에 간섭하겠다, 구조조정을 해서도 안 된다, 통 폐합도 안 된다는 등, 소유자가 하려는 모든 일을 간섭하려들면 ‘영업의 자유’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경영참여는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영업의 자유’는 ‘노동3권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이익은 고용주의 경영에 대해 감시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아니함으로써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라. 노동시장의 유연성
1) 영업의 자유 내지 노동3권으로부터의 자유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해고의 자유를 필요로 한다. 물론 해고는 부당노동행위(不當勞動行爲)에 해당하지 않아야 하며 기회비용으로 파악되는 임금기금의 범위를 넘어 악용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러한 범주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한 고용주에게 해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해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아니하는 한 신규 고용도 이루어지지 아니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크게 훼손이 된다. 근로자의 재배치도 같은 문제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 많은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옮기려 하고 해외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출을 하지 못하는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나 고용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조는 입만 열면 노조 조직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하는 조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재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 기득권만을 보호하기 위한 주장을 펴고 있을 뿐 실업 상태에 있는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적인 구도를 그리고 있지는 아니하다. 그러기에 전국적 단위의 노동조합인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철폐를 주장하고 있지만 개별기업 차원의 현실을 보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 기존의 정규직에게 배분되는 임금기금이 축소된다는 것을 내세워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실업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기존 노동자가 받는 임금 총액의 감소를 수반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고용주가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기존의 노동자가 입는 불이익이란 없다(최근 입법화되는 주5일 근무에서도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고용주의 경우는 고용주가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 엄청난 인건비부담을 안게 된다. 결국 노조의 주장은 실업자와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립 서비스(lip service)이상은 아니라고 본다.
2)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관련하여 시사적인 보도가 있다. 한국노총 사무총장 김성태는 지난 9. 22 부터 9. 24 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 미 재계회의에 참석하였다가 미국 재계(財界) 대표들의 질문이 집요할 정도로 노사문제에 집중되었으며 그로 인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에는 과격하고 전투적인 노조가 판을 치고 그로 인해 노동시장이 경직되며, 고임금 요구가 노조의 일상적 활동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 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성태 사무총장은 “노조에서 경영에 참가하면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해 결국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누가 한국에 투자하겠는가” 하고 우리나라의 노조의 투쟁방식을 우려하였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해치는 노조의 투쟁방식은 기득권을 보호하는 편협한 투쟁일 뿐 아니라 결국은 우리 경제의 활성화를 막고 외국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게 하는 것으로서 정당한 방향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마. 참여경제
노동자의 경영참여 논쟁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가 친(親)노동자 정책을 취하던 출범 단계에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일부 정책입안가들의 발언에 의해 더욱 가열된 바 있다. 다행이도 노 대통령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의 분배라는 건전한 입장을 표방한 이후에는 정책입안가들이 더 이상 이 논쟁에 개입하지 아니함으로써 적어도 정부 차원에서는 이 문제가 일단락된 것이라 보여진다.
노동자의 경영참여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문제는 자칫하면 참여경제(參與經濟. participatory economy)라는 주장과 연결될 수 있음은 주의를 요한다.
참여경제의 이론적 근거는 마이클 앨버트(Michael Albert)에 의해 더욱 세련되어지고 파레콘(parecon)이라는 조어(造語)가 만들어지기까지 하고 있는데, 참여경제에서는 자본주의를 초월하기 위해 공평성, 연대, 다양성, 자율관리, 생태계의 균형 등에 입각하여 세계적 대안을 제시함과 아울러 개별국가 차원의 제도적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을 표방하는 한편, 소유에서 비롯되는 특별한 권리나 소득상의 특혜를 없애기 위해 모든 시민이 직장을 균등하게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레콘 주장자들은 노동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위계적 분업을 거부하고 대신 각 행위자들이 수행하는 직무 또는 직업들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그 실현을 위하여 노동자와 소비자로 구성되는 각 평의회가 구성된다. 그리고 평의회는 각 개인들의 능력을 평가하여 개인이 종사하게될 직업을 결정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균형적 직군(均衡的職群. balanced job complex)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이 점에 대하여는 마이클 앨버트의 Parecon - Life After Capitalism 참조).
이러한 참여경제가 마르크스(K. Marx)의 이론의 새로운 버전인가 하는 점은 논쟁이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는 근로자의 자율경영(workers self management)을 선언하고 종업원 5인 이상의 기업이면 근로자의 대표체인 근로자평의회에서 담당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이 제도하에서 노동자는 임금 대신 기업의 수입(earnings)을 배분받게 되었는데, 그 결과 시장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됨으로써 제도는 대실패로 끝이 났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노동자로 구성되는 평의회가 경영과 관련된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고 이 점에서 참여경제가 주장하는 순수한 형태와는 다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 논쟁되고 있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참여경제에서 주장하는 노동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그러한 입장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Ⅲ. 이해의 충돌
1. 성장과 분배
가. 분배의 불평등도
1) 경제학자들은 종종 경제의 불평등 정도를 로렌츠 곡선(Lorenz Curve)으로 나타낸다. 로렌츠 곡선은 인구의 누적비율을 가로축으로, 소득의 누적비율을 세로축으로 하는 정사각형에 계층별 소득분포를 표시하고 있다. 만일 소득분배가 완전히 평등하다면 20%의 가구는 총소득의 20%를 차지하고 40%의 가구는 총소득의 40%를 차지할 것이다.
그림(c)를 로렌츠곡선을 나타내는 평면이라 할 때 대각선 OO'는 완전균등분배(完全均等分配)를, OTO'선은 한 사람이 소득 100%를 차지하는 경우로서 완전불균등분배(完全不均等分配)를 나타낸다. 따라서 한 나라의 로렌츠 곡선은 OO'선과 OTO'선 사이에서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1976년과 1997년의 로렌츠곡선은 그림에 표시된 바와 같다. 위 그림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적어도 1976년과 1997년 사이에는 소득불평등 정도가 상당히 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아울러 ‘20:80 법칙’이라고 부르는 경험법칙이 있는데, 파레토(Pareto)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이 법칙은 단순히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에 이르기까지 실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분배의 문제와 관련하여 소박하게 말하면 상위 20%의 사람이 총소득의 80%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법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이 총소득의 40%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로렌츠곡선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배의 불평등도와 관련하는 한 ‘20:80 법칙’은 불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강하다 할 수 있다.
2) 로렌츠곡선은 한 나라의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유용하기는 하나 다른 경제의 소득분배상태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지니계수(Gini codfficient)가 이용되고 있는데, 지니계수는 그림의 대각선인 완전균등분배선 OO'와 로렌츠곡선 사이의 면적을 삼각형 OTO'로 나눈 값이다. 지니계수가 그 값이 작을수록 분배의 불평등도는 완화된다 할 수 있다.
나. 파이 논쟁
1) 성장과 분배의 논쟁은 흔히 ‘파이(pie)논쟁’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파이’라는 먹을 것을 등장시켜 한 나라의 정책기조를 ‘파이’를 키우는 성장위주로 나가야 하느냐, 이를 고르게 나누는 분배위주로 나가야 하느냐 하는 식으로 논쟁을 하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분배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성장론자들은 고소득층이 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로 소득이 집중되어야 투자와 성장이 더 많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를 창출할 기회의 확대가 가능하도록 규제완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감세를 통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동기를 강화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성장의 과실(果實)은 마침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방울져 떨어진다(trickle down) 는 것이다. 그러나 분배론자들은 성장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득분배가 잘 이루어져야 하며 그 분배가 잘 이루어질수록 성장이 잘 된다고 보고 있다.
2) 경제발전과 소득분배의 관계에 대하여 쿠즈네츠(Simon Kuznetz)의 U자 가설(U-hypothesis) 과 에델만과 모리스(Irma Adelman & Cynthia Taft Morris)의 연구 등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①생존유지적인 전통적 농업부문 내에서 경제성장이 시작하면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현저하게 증대한다. 빈곤층 60%의 소득분배 몫이 크게 감소함과 동시에, 중간소득층 20%의 몫도 감소한다. 한편 상위소득층 5%의 분배 몫은 크게 증가한다. ②개발도상국에서 경제의 이중구조가 축소됨에 따라 주로 중간소득층이 경제성장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빈곤층 60%의 소득분배 몫은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악화한다. ③성장구조가 이중경제 형태에서 더 광범위한 베이스를 가진 형태로 변해도, 성장의 이익을 얻는 것은 중간소득층이다. 빈곤층 40%의 소득은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악화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사용한 이중구조(dual structure)란 경제면에 작용하는 이질적 양식들이 각각의 세력을 형성하며 대립관계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보통 근대부문과 전통부문이 공존하는 구조를 말한다.
그 경제적 의미는 보통 루이스(Arthur Lewis)의 무제한노동공급이론(無制限勞動供給理論. unlimited supply theory of labor)을 통하여 설명되고 있다. 이 이론에서는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면 노동의 가격인 임금은 생존유지수준으로 결정된다. 이 임금수준에서 노동공급이 노동수요를 초과하게 되면 노동의 공급은 무제한으로 된다고 한다.
여기서 주된 논점은 아니지만 위에서 설명한 관계를 그림(d)를 통하여 살펴보자.
그림에서 무한노동공급은 전환점에 도달하기까지이다. 이 전환점에 도달하기까지 임금총액은 사각형 OWP1L1 → 사각형 OWP2L2 → 사각형 OWP3L3로 커지기는 하나 노동자 한 사람당 받은 임금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의 이익(이윤)은 다각형 WN1P1 → 다각형 WN2P2 → WN3P3 로 커져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주식으로 분할되어 소유하고 있음에 비추어 기업의 이익은 저축이 가능한 중간소득층이 경제성장의 이익을 누린다는 이유이다.
그리고 전환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잉여노동이 없어지게 됨으로써 실질임금이 상승하기 시작하고 그 이후는 자립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3) 어쨌든 쿠즈네츠나 에델만, 모리스는 이러한 실증연구를 통해 빈곤층의 운명이 개발정책의 주요하고 명확한 초점이 되지 않는 한, 경제발전은 사회적 불공정을 강화할 뿐 이며 빈곤층의 소득불평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속화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된다. 즉 트리클다운 가설에 대한 반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과 궤를 거의 같이 하면서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득의 불평등은 초기단계에서는 증가하지만, 이후 서서히 감소하며 , 고도성장이 상대적 평등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증거는 없다 는 결론에 도달한 실증은 아훌와리아(Montek Ahulwalia)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훌와리아의 이러한 결론은 결과적으로 방울져 떨어진다 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가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다만 트리클다운의 성질상 성장의 과실이 빈곤층에게까지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fairly long time)이 걸릴 뿐이라는 것이다.
다. 성장에 대한 기여의 유도
1) 총소득이 상위소득층에게 집중되더라도, 즉 엄청난 소득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불평등도가 심한 브리질, 아르젠티나 등 남아메리카가 한국이나 대만 등과 같이 불평등도가 낮은 나라보다 성장이 뒤떨어지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파이’를 키우기 위해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을 편다는 것이 성장과 직접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러한 정책들이 의욕적으로 추진된 1980~90년대의 성장률 2.2%가 그러한 정책이 추진되지 않았던 1960 ~70년대의 성장률 3.2%와 비교하여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소득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상위소득층에게 집중된 소득이 투자로 연결되지 아니하고 소비나 성장과는 무관한 투기로 연결되며 혹은 퇴장(退藏)되는데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보다 근본적으로 과도하거나 잘못된 분배 요구가 가져오는 부작용이다. 중앙일보가 지난 4월 집중분석한 반기업(反企業) 정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81%가 ‘오너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sustainable growth)을 위해서는 경쟁력을 가지는 ‘창조적 생산(creation)’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와 같은 과도하거나 잘못된 분배의 요구는 성장으로 인한 과실(果實)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기 충분하다 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요인을 제거한다면 트리클다운 효과를 통하여 성장이 분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투기자금은 수 백조 원에 달하면서도 막상 투자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투자를 이끌어낼 만한 유인(誘因)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나 사회가 투자를 이끌어낼 만한 유인을 방해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에는 우선 ‘파이’를 키우는 것이 지금 당장 ‘파이’를 나누어버리는 것보다 나은 것은 당연하다.
2) 물론 이에 대해서는 지금 ‘파이’를 키우는데 참여한 노동자가 커진 미래의 파이를 나누는데 반드시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래에 분배에 참여할 지도 모르는 노동자에게 미래에 커질 ‘파이’를 위하여 ‘파이’를 키우는데 참여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에 관하여 흔히 노동자계급이 과거 착취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보상을 받아야 하는 차원에서도 ‘파이’에서 다른 생산요소의 소유자에게 돌아갈 몫보다도 더 큰 부분을 차지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과거 미국에서 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보상받는 차원에서 ‘소수인종’(少數人種. minority)에 대한 배려라는 형식으로 일정한 지원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두는 주장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란 정책의 결과를 향유하기까지는 시차(time lag)가 있을 수 있고 그 결과를 향유하는데 있어 구성원을 달리할 수 있는 점은 정책의 본질상 어쩔 수 없는 면이다. 극단적으로는 맨 나중 이익을 향유하는 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아니한 채 이익만을 향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세대를 위하여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적어도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후자의 문제는 약간 성질을 달리한다. 흑인의 경우는 유전(遺傳. heredity)이라는 특성의 개입으로 과거의 차별이 지금의 흑인에 대한 열악한 상태를 낳았다는 연결을 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노동자의 경우는 유전적 특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과거의 노동자계급으로 현재의 노동자계급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과거 노동자에게 가하여진 불이익에 대해 그와 전혀 연결되지 아니하는 현재의 노동자가 생산성을 초과하여 더 큰 배분을 받아야 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점을 해결하는데는 기업 단위로 이러한 문제를 접근해서는 아니 되고 사회 전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 기업 차원에서의 접근은 한 기업의 갈등을 초래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 취업과 실업
가. 자발적 실업과 비자발적 실업
1) 실업의 존재는 노동의 수요가 증가할 때 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수반하지 아니하고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적정한 실업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설이라 할 수 있다. 되풀이하는 설명이지만 루이스의 무제한노동공급가설은 이 점을 배경으로 한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에 의해 균형고용량과 균형임금 수준이 결정된다고 보면 그와 같이 결정된 고용량 수준은 바로 완전고용수준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언제나 완전고용(full employment)이 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가 고전학파의 입장이다. 고전학파에서는 자발적 실업(voluntary unemployment)만 존재할 뿐이다. 그림(e)에서 BC 구간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전학파에서도 비자발적 실업(involuntary unemployment)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즉 노동조합의 역할이라거나 최저임금제의 실시와 같은 외생적 요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임금이 균형임금수준보다 높게 된다. 그로 인하여 노동의 공급이 노동의 수요를 초과함으로써 잉여노동자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되는데, 바로 그 잉여노동자가 비자발적 실업자에 해당한다. 비자발적 실업의 크기는 그림에서 AB 구간으로 나타난다.
2) 자발적 실업이 존재하는 상황은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청년실업’을 보자. 금년 10월말 발표만 보더라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졸자 수는 18만 명이 늘어난 반면 대졸자들이 갈만한 일자리는 32만개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대졸자가 ‘갈 만한 괜찮은 자리’라는데 너무 집착함으로써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요의 감소로 기업이 생산을 감축하기로 하고 일부 노동자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해고의 기준을 임금의 하향조정에 동의하지 아니하고 직장을 떠나는 경우도 자발적 실업에 속한다. 국가 정책적인 측면에서 자발적 실업은 실업으로 취급하지 아니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 Jobless Korea와 Moneyless Korea
Moneyless Korea와 Jobless Korea라는 말이 있다. 고소득 정규직과 같은 일자리는 아무리 실업자가 많아도 임금이 낮아지지 아니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일할만한 일자리시장은 Jobless Korea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임금 비정규직과 같은 일자리는 차라리 실업자로 지내더라도 취업하려는 자가 적은데, 이러한 일자리시장은 Moneyless Korea라 부른다.
1) 고소득 정규직의 경우는 경제학의 일반원리에 의하면 당연히 임금이 낮아져야 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해고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거의 하향조정은 불가능에 가깝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물론이고 임금의 하향화를 막기 위해 노조를 배경으로 더욱 강성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Jobless Korea는 고유한 자발적 실업과 관련된 문제라기 보다는 앞서 말한 ‘영업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할 문제이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영업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경우에 기회비용에 상당한 이익(이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과 단체협약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자에 대한 사실상의 정년을 하향 조정함과 아울러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자를 법과 단체협약에서 정한 정년까지 고용한다는 것은 한정된 임금기금으로서는 충당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1년 노동부의 임금구조 기본통계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임금근로자의 평균 퇴출연령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보다 10년이나 빠른 35세로 나타나 있는데, 이는 결국 노동시장이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노조의 강성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2) 청년실업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청년들의 현실과 유리된 눈높이는 반드시 조정되어야겠지만 자발적 실업이라는 이유로 자발적 실업자를 실업자의 범주에서 제외시킨다는 것 자체가 국가가 청년실업 대책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는 모든 수단을 기울여서라도 청년의 잠재적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마련하여야 한다. 청년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가까운 장래에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 세대의 공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다. 제조업의 붕괴
1) 제조업의 붕괴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최근 우리나라 제조업 공장들이 급속히 해외 이전을 서두르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순수한 경제이론적 측면에서 보는 경우 공장의 해외이전은 비교우위이론(比較優位理論. the principle of comparative advantage)에 입각하는 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만일 해외에서의 제조가 기업에 이익이 되고 국가에게 부(富)를 가져다준다면 우리나라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3국이 뚫고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집단적인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오는 산업은 제조업이라는 점이다. 산업의 발전단계에 비추어 제2차산업인 공업(제조업)에서 제3차산업인 서비스산업으로 이행되어 가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은 제조업만큼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 강조하건대, 제조업의 뒷받침이 없이는 제3차산업이라는 것이 흥륭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금융강국에 속하는 스위스나 홍콩이 강력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IT산업이 미래의 전략산업으로 국가가 사활을 걸고 있지만 하드웨어(hardware)에 관한 산업은 제조업 그 자체이다. 그리고 소프트웨어(software)에 관한 산업은 성공할 경우 고부가가치(高附加價値)의 특성상 기업에 막대한 이익은 가져다주지만 제조업에 비해 비교적 소수의 인력만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고용창출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아니하다.
수출을 전제로 하기는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제조하든 국내에서 제조하든 동일한 이익을 내는 경우에는 국내에서 제조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훨씬 좋다. 그리고 해외에서 제조하는 경우가 국내에서 제조하는 경우보다 다소 많은 이익을 내더라도 국내에서 제조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훨씬 좋을 수 있다. 해외에서 부담하는 많은 제세공과(諸稅公課)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제조하는 경우 일자리 보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분배’이다. 이 말은 강성노조에 대항하는 경영계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사용한 바도 있다. 독일이 분배를 성장보다 우선하는 복지천국인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독일에서는 이제 수만명 씩 고용하는 대규모공장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을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2)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하는 이유 가운데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고임금 구조와 강성노조에 의하여 조성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중국의 제품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중국의 수출제품 가격이 세계시장에서 표준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 점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리처드 프리먼(Richard Freeman)의 “당신의 임금이 북경에서 결정됩니까 ”(Are your wages set in Beijing )이라는 말인데, ‘자유무역은 국가간의 생산요소 가격을 균등하게 한다’는 요소가격균등화이론(要素-價格均等化理論. factor-price equalization theory)을 시니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하여는 나라간의 생산기술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전제한 약점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력이 우리나라가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에 대해서도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고, 대부분의 산업이 수년 내에 우리나라를 추월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보까지 있고 보면 비록 앞으로 중국과의 임금격차는 다소 좁혀진다 하더라도 동 임금격차가 우리나라 산업을 붕괴시켜버릴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우 지난 15년간 연평균 11%(달러 기준) 오른 반면 중국은 7.8% 상승하는데 그치며 그로 인한 임금격차가 14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조업의 해외이전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가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의 비교우위 기술을 유출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마당에 제조업의 해외이전은 가능하면 막아야 한다. 그만큼 가격경쟁력은 중요하고 따라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느냐는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될 수 있느냐 하는 점에 달려 있다.
3) 우리나라가 그와 같이 고임금 구조를 취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연혁적(沿革的)인 것으로서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가장(家長)이 생계의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에 가장은 모든 가족의 생활비를 벌어들이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점을 들 수 있다. 그렇기에 임금이 당초 책정될 당시 기준이 되는 임금은 단순히 노동자 1인의 생계비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의 생존비를 기준으로 하였고, 이것이 그 이후의 임금결정의 기준이 됨으로써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임금 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는 화란병(和蘭病. Dutch disease) 현상을 들 수 있다. 화란병 현상이란 네덜랜드가 에너지자원의 급속한 개발을 꾀하다가 오히려 경제가 병들게 되었던 사정을 빗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에 힘입어 급격히 경제가 성장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입국의 정신 아래 철저히 불균형성장전략(unbalanced growth strategy)을 추구하였고, 그로 인해 수출산업은 그렇지 못한 산업에 비해 고임금을 지급하면서 수출을 독려하였다. 이러한 고임금은 순차로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쳐 산업 전체의 임금상승을 가져왔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추진된 200만 호 건설 과정에서 국내임금수준이 급격히 높아짐으로써 경제가 활력을 잃은 일이 있는데, 이러한 예들은 화란병 현상에 속한다. 최근 정부는 300만 호 건설을 발표한 바 있는데, 주택보급률이 거의 100%까지 도달하고 있는 오늘날 자칫하면 화란병 현상이 재연될 위험이 크다 할 수 있다.
셋째는, 대기업 노조의 대마불사(大馬不死) 정신의 악용이다. 사실 IMF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대기업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특정한 기업을 죽이기 전까지는 대기업이 스스로 몰락하는 경우는 없었다. 대기업일수록 BIS비율이 극도로 악화되더라도 국가는 대기업이 파산하는 경우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만을 경계하여 각종의 구제조치를 통하여 억지로 생존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대기업의 빚은 대기업을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생존을 담보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대기업 노조는 고임금으로 국가경제가 타격을 입더라도 대기업은 최후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사고가 지배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고를 배경으로 노조의 고임금 투쟁은 계속될 수가 있었다.
물론 화란병 현상에서 보듯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상승은 상승 과정을 통하여 중소기업의 임금까지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기업과 하청업체와의 관계에서는 대기업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기금의 몫이 커지게 됨으로써 하청업체의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기금의 몫은 적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불이익을 모두 노동자에게 귀속시킬 수 없게되면서 고용주의 이익(이윤)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것이 제조업의 붕괴를 가져오는 적지 않은 원인이 된 것이다.
라. 생산성의 향상
1) 산업의 발전 단계가 농업 위주에서 공업, 특히 제조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농촌으로부터 무한한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점증하는 노동수요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의 부담을 안지 아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의 발전에 따라 잉여노동이 없어지는 단계에서는 고용주는 자본의 축적으로 노동자에 비해 교섭력이 증대됨과 아울러 기계화로 생산성이 증대됨에 따라 종전보다 적은 노동으로 종전과 같은 수준의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즉 기계화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현상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다음 예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특정목적을 추구하는데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적정기술(適正技術. appropriate technology)라고 부른다. 인구가 1,000명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이며 경제활동 참가인구는 총인구의 50%, 인구증가율은 연 3%, 저축률(=투자율)은 15%인 어느 소국(小國)의 경우 외자가 도입되지 않는 한 소국의 가능한 투자액은 150,000달러가 된다. 그 중 60,000달러가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으로 투자된다는 전제하에 위 소국은 다음 두 가지 경제정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 하나는 90,000달러를 기계설비에 투자하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90,000달러 가운데 84,000달러를 대단위공장을 설치하는데 투자하겠다는 안인데, 이 경우 추가노동력은 3명이라고 한다. 후자의 안에서는 나머지 6,000달러는 소규모시설 공장에 투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예는 최 광, 경제원리와 정책 에서 인용하였다).
위의 예에서 전자의 경우는 인구증가율과 경제활동참가율을 고려하면 노동인구는 15명이 증대될 것이므로 추가적 노동자 1인당 기계설비투자액은 6,000달러가 된다. 즉 노동자 1인당 6,000달러 상당의 자본을 사용하는 기술의 선택으로 생산이 이루어진다. 한편 후자의 경우는 증가한 노동인구 가운데 12명은 6,000달러의 소규모시설의 공장에서 고용기회를 갖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후자의 안은 성장지향적인 정책으로 전자에 비해 비교적 높은 성장은 실현할 수 있지만 소득분배의 불평등과 실업을 초래하는 문제에 직면함을 알 수 있다. 결국 어느 정책을 취할 것이냐 하는 점은 소국은 ‘성장’과 ‘분배’중 어느 것에 치중할 것이냐 하는 입장에서 결정될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후자의 안을 채택할 것이다. 이는 자본이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노동이 상대적으로 풍부하여 노동의 상대가격이 낮은 후진국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생산요소의 하나인 노동의 시장가격이 노조의 압력이나 정치적 목적 등으로 제정된 최저임금법 등에 의하여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이중구조(二重構造. dual structure)를 극복하고 단기간 내에 국가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파이’를 키우는데 있어 효율적인 보호주의(保護主義. protectionism) 정책을 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 산업의 기계화와 생산성 향상이 일자리를 빼앗는 현상은 이미 19세기부터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일자리 위협을 느낀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셔버리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 현상은 특정 국가만의 현상은 아니고 전 세계적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AWSJ)에서는 최근 미국 뉴욕 소재 얼라이언스 캐피털 메니지먼트(Alliance Capital Management)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하여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1995년 이후 작년까지 2200만개(11%)가 줄어들었다고 보고하는 한편, 그 이유로서 동 캐피탈의 조사담당이사 조지프 카슨(Joseph Carson)은 “기술향상과 경쟁 격화로 인해 회사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보다 적은 인원으로 보다 많은 생산을 위해 노력해온 덕분”이며 “같은 기간 동안 전 세계 산업생산은 오히려 30%나 증가했다”는 말을 소개하고 있다. 조지프는 위 말에 이어 “이 결과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고용부진을 미국의 일자리가 중국 인도 등 저임금 국가로 옮겨가는 현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경우에도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제조업 전체의 일자리 감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동환경의 불량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이 해외, 특히 중국으로 공장을 옮겨가고 있는 현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3)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계화와 생산성 향상이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의 성장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성장의 엔진이 멈추는 경우에는 어떠한 현상이 발생할 것인가. 전문가들에 의하면 경제성장률 1%당 5만~7만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 후퇴하는 경우 적어도 10만명의 실업자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계화와 생산성 향상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은 경제가 성장하지 아니한 채 정지하고 있다는 논리임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도 노동운동가들은 성장 자체가 일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民主勞總) 단병호 위원장은 “정부가 성장정책을 펼 경우 노동자가 희생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앙일보 2003. 7. 23. 자). 만일 기계화와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정지되는 경우에는 노동자들은 2중으로 일자리를 잃는다는 점을 망각한 때문이다.
3. 임금격차
가. 격 차
동일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同一勞動 同一賃金原則. the rule of equal pay for equal work)은 노동자들이 동일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동일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동일임금이 지급되지 아니하는 경우 그 격차를 임금격차(賃金格差. wage differentials)라 부를 수 있다.
한편 임금격차는 동일노동이 아닌 경우에도 존재할 수 있다. 즉 노동자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을 보존할 수 있는 임금, 즉 생존비 상당의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설사 근로자의 연령, 학력, 경력, 근속연수, 지식 및 기술수준 등 노동특성(勞動特性. labor characteristics)이 존재하여 동일임금은 지급될 수 없다 하더라도 지나친 격차가 존재해서는 아니 된다는 측면에서의 임금격차이다.
나. 보상적 임금격차
1) 두 직종(職種. occupations)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질적으로 동질적이며 노동시장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어느 직종에도 진입장벽(進入障壁. barrier of entry)이 없는 경우에는 직종간의 임금격차가 존재하지 아니할 것이다.
만일 어느 직종의 임금이 다른 직종에 비해 높은 경우 임금이 낮은 직종의 노동자가 임금이 높은 직종으로 이동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임금이 높은 직종의 노동공급곡선은 우측으로 이동함으로써 균형임금(시장청산임금)은 하향된다. 한편 임금이 낮은 직종의 경우는 노동자가 감소함으로써 노동공급곡선은 좌측으로 이동하게 되고 따라서 균형임금은 상승한다. 이러한 이동은 두 직종의 임금이 같아질 때까지 계속되고 그로 인하여 임금격차가 해소된다. 그림(f)는 이러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도 두 직종 사이에 임금격차가 존재한다면 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직종에서 노동하게 하는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에는 노동의 유쾌한 정도, 노동의 난이도, 작업환경, 직업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같은 비(非)금전적 요인, 임금지급의 확실한 정도, 교육훈련의 차이 등이 모두 포함되는데, 이러한 사정에서 기인하는 격차는 임금의 차이를 보상하거나 양 임금을 균등화한다는 의미에서 보상적 임금격차(補償的賃金格差. compensating wage differentials) 또는 균등화 임금격차(均等化賃金格差. equalizing wage differentials)라고 부른다.
2) 보상적 임금격차는 임금이 낮은 직종에서 노동하는 것을 유인할만한 특수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유리한 직종의 특성과 임금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작업환경이 쾌적한데서 노동하는데도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경우에 비해 임금이 높은 경우가 적지 아니하다. 즉 양자 사이에 비례 관계가 있다. 이러한 임금격차를 가속적 임금격차(加速的賃金格差. accentuating wage differentials)라 부른다.
보상적 임금격차와 가속적 임금격차의 차이를 그림(g)를 통해 본다면 보상적 임금격차는 동일한 무차별곡선 위에서의 이동으로 나타나는데 비해(즉 A→B) 가속적 임금격차는 상이한 무차별곡선 위로의 이동(즉 C의 진행 방향)으로 나타난다.
가속적 임금격차가 발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리하지 아니한 사정에서 노동하는 경우에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방적 조치로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대항적교환이론 (對抗的交換理論. contested exchange theory)이 적용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일단 작업환경이 조성되어버린 후에는 그러한 작업환경이란 그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는 일종의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와 같이 취급되어 버림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유력한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
다. 노조의 크기에 따른 임금격차
1) 달리하는 직종이 상(上)과 하(下)라는 연결형식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경우에는 일종의 임금기금에 대한 쟁탈이라는 측면을 띄게 된다. 제조업의 대기업은 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이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고 있고, 건설업의 대기업은 하도급의 형식으로 공사에 참여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기업이 노동자의 요구에 의해 생산성을 넘는 임금을 올리는 경우 그 대기업은 흔히 협력업체나 하도급업체에게 지급할 물품대금이나 공사대금을 줄이는 방법을 동원하여 채산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협력업체나 하도급업체는 악화되는 채산성을 막기 위해 이들 업체의 노동자에게 지급할 임금을 삭감하거나 올려야 할 임금을 올리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지금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임금격차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임금격차가 이것이다.
2) 대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영세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의 두 배가 된다는 통계도 있다. 대기업이나 영세기업 노동자의 노동이 동질의 것이라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정신을 크게 훼손할 수도 있다. 영세기업은 중소기업의 극단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임금격차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소기업 일반에 공통되는 현상일 것이다.
대기업의 임금상승은 종국에는 중소기업의 임금상승으로 이어진다. 특히 중소기업이 노조가 조직되고 있는 경우에는 전국 단위의 노동조합, 예를 들어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의 지원과 영향으로 임금상승의 기간이 그렇지 아니한 경우보다 단축될 것이다.
문제는 임금상승의 시차가 가지는 이익은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로 귀속된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전(全)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주도하고 있고 그 임금상승은 과거의 임금상승과 미래의 경제상황과 물가수준을 예측하여 책정되고 있는데다, 더욱이 생산성을 초과하여 상승하는 경우가 적지 아니하기 때문에 임금인상후의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인한 소득보전이 이루어진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우는 대기업의 임금인상이 가져오는 비용인상(cost push)과 그 후의 물가 상승, 그리고 임금상승이 생산성을 초과하여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정 등으로 소득보전이 어려운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형평성은 산별노조(産別勞組) 수준에서 집단적으로 단체협약이 이루어지고 이 협약이 중소기업을 망라한 개별기업까지 구속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 대기업 노조가 추진하는 임금인상은 중소기업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1) 상당수의 비정규직은 저임금에 따른 ‘절대적 빈곤’과 정규직이 받는 임금과의 격차에서 생기는 ‘상대적 빈곤’이라는 이중의 빈곤을 겪고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이중의 빈곤은 우리 근로기준법이 본질적으로 정규직을 기준으로 짜여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규직 노동자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아니하려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이 자신들에 대한 정규직화를 부르짖는 근거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정된 임금기금을 나누어야 하는 경합관계에 있다. 따라서 달리 임금기금을 키우기 위한 외부의 지원이 없는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존의 정규직에게 돌아갈 임금기금을 감소시키는 것이 되어 받아들이지 아니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고용주가 임금기금의 부족분을 메꾸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특히 임금기금이 필자가 주장하듯 기회비용을 고려한 잔여적 의미의 임금기금이라면 기업의 존폐가 달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는 최근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내용의 입법을 염두에 두는 것 같은 발표가 있었지만 만일 그와 같은 입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입법취지와는 달리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회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고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아주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과거 독일에서 이러한 내용의 입법을 하였다가 다량의 해고가 일어났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2)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근본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원인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에 만연되어 있는 고임금 구조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이중의 빈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단순한 최저임금은 고용주에게 기회비용의 확보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정규직마저 해고를 늘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고용주가 고임금을 지급하고 있으면서도 정규직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하는 기능이 제한되고 그로 인해 경영의 필요에 따른 해고나 근무 재배치가 여의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용주로서는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에는 물론 어느 정도 고용주로서도 임금기금에 대한 지원을 늘리려는 전향적인 자세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규직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포기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로서 개별기업 차원이 아닌 사회 전체적인 합의가 필요한 점이라 할 수 있다.
4. 차 별
차별(discrimination)에는 지역적, 인종적, 학력에 따른 차별이 있을 수 있으나 성(性)에 따른 차별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의 입법 동향을 보면 성에 의한 차별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간접차별, 사실상의 차별이라는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남녀차별을 문제삼는 사안에서 달리 그와 같은 차별을 합리화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성에 의한 차별이라고 보는 이상 특히 여성측에서 문제삼는 경우에는 거의 모든 사안이 남녀차별적인 것으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가. 전화교환수의 정년
필자는 이러한 문제에 부딪치는 경우 항상 필자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을 당시 접하였던 전화교환수의 정년을 둘러싼 위헌 논란을 상기한다. 그 사건에서 전화교환수의 정년은 40세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재직하는 교환수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왜 남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직종은 정년이 50세 이상인데 여성이 근무하는 전화교환수는 정년이 40세에 불과하느냐, 이것은 남녀차별이 아닌가 하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당시 대법원판결은 전화교환수의 정년에 관한 규정은 남녀차별적인 것임을 이유로 무효화시켰다. 위 대법원판결은 간접차별, 사실상의 차별까지 금지하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위 대법원판결은 잘못된 선례라고 믿고 있다.
당시 필자는 재판연구관으로 대법관에게 이러한 요지로 보고했다. “전화교환수의 대부분이 여성인 것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만 현실을 보면 전화교환수의 대부분은 여고(女高)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미혼여성으로서는 은행원과 함께 선망하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이를 떠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있는 미혼여성이 넘쳐나는 마당에 이러한 미혼여성에게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반면 정년이 문제되는 전화교환수는 대부분 기혼여성으로서 40세를 넘어 취업함으로써 얻는 이익이란 가정을 보다 윤택하게 한다는 정도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남녀차별의 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취업자와 미취업자를 전체적으로 조정하는 차원에서 파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굳이 전화교환수의 정년 문제를 위헌이라고 결론지으려면 남녀차별이라는 측면보다 다른 직종의 업무와 정년을 비교하여 전화교환수의 업무가 다른 직종의 업무와 큰 차별성을 가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단기의 정년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이 점에서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충 이러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이 글에서 일관되게 주장하여오고 있는 사회 전체적인 합의의 필요성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나. IMF위기와 여성근로자의 퇴출
IMF위기를 맞이하여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퇴출하는 기준으로 부부가 모두 취업하고 있는 경우에는 여성 노동자를 퇴출시키는 예가 많았다. 그런데 그러한 기준에 의한 퇴출은 IMF위기가 극복된 후 당시 퇴출된 여성이 자신이 퇴출된 것은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위헌적인 조치이었음을 이유로 제소하는 경우에 거의 대부분 여성 노동자의 승소로 결말지어졌다. 간접차별, 사실상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지금 기준에 의하면 그와 같은 결론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질 것임이 틀림없다.
이 점에 대해서도 필자는 입장을 달리하고 있고 그 논리는 전화교환수의 정년에 대한 위헌 논쟁에서와 거의 같다. 당시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 특히 남자가 가장으로서 유일한 소득원이었던 경우 그 노동자가 퇴출된다는 것은 거의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절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부부가 모두 취업하고 있었던 가정에서는 어느 한 쪽이 퇴출되는 경우에는 그 가정이 종전보다 덜 윤택하게 생활한다는 것일 뿐 가족을 거리로 내몰지는 아니하였다. 이 경우 어느 가정을 보호해야 하는가는 명확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퇴출기준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 퇴출된 노동자가 우선적으로 여성이었다는데 있다. 남녀차별을 문제삼기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였더라면 IMF위기 당시의 퇴출 기준이 도전받지는 아니하였으리라 보고 있다. 즉 당시 퇴출 기준을 개별기업별로 해결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정부가 노력을 하였어야 했고 부부가 모두 취업하고 있는 경우 부부들의 합의에 의해 취업을 포기하는 대상자를 정하도록 하였더라면 사회적으로도 이끌어내어진 합의가 구속력을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퇴출되는 노동자는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가정은 아직도 존재하는 남녀간의 임금격차에 의해 주요수입원이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IMF위기 당시의 퇴출 기준이 주는 교훈은 사회적 합의를 등한시하는 개별기업의 조치는 성(性)적 차별이라는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Ⅳ. 사회적 합의를 통한 조정
1. 임금결정에 대한 수요와 공급측 요인의 요약
임금수준의 결정은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원리적이고 실제의 적용에 있어서는 상당히 변용되고 있다.
그중 노동에 대한 수요는 ①기회비용과 ②영업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 내에서 기회비용의 확보를 가능케 하는 고용 형태의 혼용으로 나타난다. 즉 임금상승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면 우선 해고를 증가시키고, 고용의 경우에도 사실상의 정년을 법이나 단체협약 등에서 정하고 있는 정년보다 끌어내리며, 임금수준과 해고 등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운 비정규직 고용으로 나가게 된다.
한편 노동에 대한 공급은 ①노조의 힘을 배경으로 생산성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결정을 유도하는 한편 ②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수준보다 높은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됨으로써 현재 고용되고 있는 고용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집단(competing group)의 등장을 억제하면서 고용주로 하여금 경쟁관계를 노동자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대한 무력화의 시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반대 등을 통해 나타나듯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의 훼손을 허용한다.
2. 임금결정의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가. 악순환
우리나라의 노조가 지나치게 강성으로 치닫고 있고 그 수준이 우려할 정도라는 것은 한국노총 김성태 사무총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 미 재계회의를 참석하고 돌아와 토로한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도 노조가 날이 갈수록 더욱 강경투쟁으로 나서게 되는 것은 해고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따라서 강경투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해고에 대한 불안을 없애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 수 있다. 사회안전망(社會安全網)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퇴출시킨 기업이 노동자를 퇴출시킨 후에도 끊임없이 퇴출된 노동자를 재고용하는 길을 열어두며 경우에 따라서는 스톡옵션(stock option)을 부여하는 방법 등이 그 방법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그리고 노조로서도 자신들의 강경투쟁은 기존의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고용주의 기회비용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자세가 필요하고,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식의 투쟁만을 일삼아서도 안 된다. 노동자가 고용주의 기회비용을 희생시키는 투쟁이나 자신의 해고불안을 이유로 한 강경투쟁은 고용주의 기존노동자에 대한 회피로 이어지고 이는 고용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이어진다. 일종의 악순환(惡循環. vicious circle)에 빠지고 있는 셈이다.
나. 사회적 안정의 기능
노동자의 임금결정은 이제 단순히 현재 취업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만 결정되어서는 안될 정도로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졌다. 취업에 있어서 청년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가야할 역군이기 때문에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되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의 사실상의 정년이 30대로 낮추어지는 것은 그들이 축적한 지식과 기능, know-how를 사장시키는 것으로서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가져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관계에서는 일방적으로 대기업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 임금기금의 분배에서 형평을 잃고 있다.
이제 임금결정의 문제는 개별기업 차원에서 해결될 수준의 문제를 떠났다. 그 해결에는 고용주의 기회비용에 대한 희생과 기존의 노동자의 기득권 포기가 전제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고용주와 대기업 노동자에게 압력을 넣지 아니하는 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국가적, 전(全)사회적 관점에서 합의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용주들도 사회적 안정은 일종의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이다. 공공재는 일반적으로 무임승차의 대상이기 때문에 비용부담을 회피하려는 것이 일반적 속성이지만 사회적 안정은 고용의 안정을 가져오고 생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제조업 공장들의 해외이전을 막음으로써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용주가 되었던 노동자가 되었든 임금결정은 개별기업이나 단순한 노조투쟁의 목표관리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국가경제에 직결됨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이 점은 앞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또다른 예
사회적 합의는 모든 정책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임금결정의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 강조하고 싶다. 현재 자유무역을 보장하기 위한 FTA(Free Trade Act) 체결이 다각도
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농산물시장의 개방과 관련하여 칠레와의 FTA마저 국회 동의 과정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 FTA의 제정에는 각종 이해단체들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반발이 단순한 직역이기주의의 발상이라고 몰아쳐서는 안 된다. FTA 추진은 물론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추진은 한 직역에 대하여는 경제적 부(富)를 가져다주지만 다른 직역에는 피해를 준다.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이 없는 추진은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FTA의 추진에 앞서 피해를 입는 직역에 대해 경제적 이득을 보는 직역에서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합의를 미리 도출할 필요가 있다. 이미 FTA가 종결된 마당에서는 경제적 이득을 본 직역은 FTA는 일종의 공공재라고 보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직역에 대한 보상을 회피하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3. 참고자료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한 점들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고 필자가 15대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정립되어온 내용들이다. 필자의 1998. 11. 16 제198회 임시국회에서 경제와 관련한 대정부질문에서, 그리고 1999. 4. 14 제203회 임시국회 5분 자유발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중 5분 자유발언 내용을 자료로 첨부한다.
[제203회국회 국회본회의회의록 제1호 1999. 4. 14. 오후 2시]
존경하는 국회의장과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환란을 시작으로 파산의 위기로 치솟던 한국경제가 안정을 되찾고 실물부분의 성장잠재력의 배양을 위해서 박차를 가함으로써 2%의 경제성장과 200억불의 외환흑자 목표가 순조롭게 진행되어오던 중 지하철 파업을 필두로 하는 주요산업에서의 파업이라는 뜻하지 아니한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파업에 대하여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대책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최근 돌출변수로 나타난 환율 불안과 유가 급등이라는 대외적 변수와 결합하여 우리 경제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는 위험성이 아주 크다 할 것입니다. 그만큼 정부는 이러한 파업이 더 이상 확산되고 장기화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의원은 금번의 파업이 노동자의 생존권과 연결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파업이 내재하는 도덕적 해이현상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번 지하철 파업은 이러한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하철공사는 연간 운영적자 3,450억원, 총부채 3조4,923억원의 부실 덩어리로 하루에 10억원씩의 빚이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실 덩어리를 정상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영 효율성의 측면에서 km당 운영인력을 보면 지하철공사는 85명으로 2기지하철 운영주체인 도시철도공사의 43명은 물론이고 런던지하철의 46명, 동경지하철의 66명보다도 많게는 2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하철노조는 경영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고통분담은 외면하고 강경 파업의 길로 치달았고 그로 인해서 하루 10억원 이상의 손실이 추가 발생되고 있습니다.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기업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기업에는 노동자라는 이해관계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에는 노동자뿐만이 아니고 개미군단으로 표현되는 소액주주와 채권자라고 하는 이해관계자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종 조세와 공과금을 통해서 국가 경제정책의 운용을 가능케 하여준 말없는 다수인 국민들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업은 기업의 사용자와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액주주와 채권자 및 말없는 국민들로부터 위임을 받아서 경영하는 것이고 따라서 소액주주와 채권자 및 말없는 국민들의 기대와 이익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익에 우선하고 보호되어야 하며 어떤 이유로든 소액주주와 채권자 그리고 국민들의 이익과 기대가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익에 밀려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기업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기업이 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하고 그 결과를 자신들에게 귀속시키지 아니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파업은 노동자들이 지하철은 그들이 지하철을 건설할 수 있게 하고 적자의 누적에도 운영을 가능케 한 시민들, 국민들의 혈세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철저한 인식의 결여와 현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도덕적 해이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가는 것을 차단하여야 하고 우리 정치권이나 정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시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기업이 경영 효율성이 무시된 채 경영되고 적자가 심화되더라도 경영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조정이 인력감축마저 불가능하게 하는 그러한 경영환경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도 그들이 기업이 주인이라는 명분과 의식에 상응하는 권한을 보장하여주고 그 권한에 상응해서 경영성과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기업의 존속에 대해서 결정적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기업의 청산단계에서도 소액주주나 채권자 및 국민들의 기대와 이익에 우선해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이중적 우월적
지위는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측면과는 어울리지 아니할 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으로써 법, 제도와 경제정책의 운용에 있어서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입니다.
물론 정부로서도 금번의 파업을 계기로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파업이 더 이상 우리사회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과감한 돌파구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노동자가 일터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읍시다. 따뜻한 마음씨로서 정치가 이를 감싸주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그리고 노동자 여러분!
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은 지금 상황에서 회피할 수가 없습니다. 기업이 살아남아야 우리 경제도 안정이 되고 번영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에는 고통분담이 뒤따른다 하더라도 노동자 여러분을 진정으로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이번 파업은 이미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명분이 없는 파업을 강행하여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다면 다음에 명분을 건 투쟁에 대해서도 지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시작하거나 진행중인 파업을 즉각 중단하고 일터로 복귀합시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