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사실에 치중할 것이며, 문자에 치중해서는 안된다
- 구분법제칼럼(저자 : 윤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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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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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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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실에 치중할 것이며, 문자에 치중해서는 안된다
(Leges non verbis sed rebus sunt impositœ : Laws are imposed on things, not words.)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가 고리대금업자로 악명이 자자한 유태인 샤일록에게서 결혼 자금을 빌리는 것을 보증해 준다. 이 보증계약에서는 정해진 기일까지 변제하지 못하면 위약금으로 안토니오의 몸 어느 부분에서든지 1파운드의 살점을 베어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샤일록에게 부여하고 있다. 바사니오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포샤와 결혼하게 되지만, 안토니오는 그의 무역선이 전부 파선되어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고 법정에 서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포샤는 법학박사로 변장을 하고 베니스로 가서 안토니오의 재판에 관여한다. 결국 샤일록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계약서에는 ‘살 1파운드’라고 했으므로, ‘살’만 1파운드 취하여야 하며 살점을 베어내는 과정에서 한 방울의 피라도 흘리게 되면 베니스 법에 따라 샤일록의 모든 재산을 몰수한다는 판결을 내리게 한다. 결국 샤일록은 그의 권리인 위약금을 포기하고 맥빠진 채 법정을 떠난다(세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 ).
예링(Rudolf von Jhering)은 권리를 위한 투쟁(Der Kampf ums Recht)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샤일록이 비열한 기지(機智)에 의해서 자신의 권리를 무효화하는 판결의 중압으로 뭇사람의 조소를 받으며, 기가 죽어 낙담해서 후들거리는 무릎으로 비틀거리며 그 자리를 떠날 때 그 누가 그와 함께 베니스의 법률이 굴복당했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사라진 자가 유태인 샤일록이 아니라, 중세기 유태인의 전형적인 모습, 즉 권리를 요구하여 헛되이 부르짖는 사회의 천민(賤民)이라는 느낌을 금할 수 있을까 ”
법이 그리고 정의가 바로 서려면 사실에 치중할 것이며 문자에 치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처럼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유태인 샤일록은 그에게 합당한 정의가 본질(사실)은 외면된 채 명목(문자)에 치중한 말꼬투리 잡기에 의해 전복(顚覆)되었다는 것, 그리고 베니스의 법률도 천민인 그에게서는 고개를 돌렸다는 것에 참담하기 그지없는 심경이었을 것이다. 만약 살점은 당연히 피를 포함하는 것이지만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위약금으로 삼는 것은 법의 이념인 정의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결하였다면 샤일록은 천민이기 때문에 그에게 정의가 거부되었다는 좌절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장 근 [대통령비서실 근무, 전 법제처 법제관]
루돌프 폰예링은(Rudolf von Jhering)은 문학적 소양이 깊은 법학자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입법자는 철학자와 같이 생각하고 농부처럼 말해야 한다.” (Der Gesetzgeber soll denken wie ein Philosoph, aber reden wie ein B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