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방문에서의 단상들
- 구분방문기(저자 :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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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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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085
- 담당 부서
대변인실
유럽방문에서의 단상들
최영찬(법제처 경제법제국 서기관)
1. 오래간만의 기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어학연수라는 이름으로 외국을 왕래한다지만, 필자는 지금껏 한 번밖에 경험이 없으니 이번의 선진법제조직연구실무연수를 위한 출장은 정말로 오래간만의 기회이다.
이번 연수단은 필자를 포함한 15명(법제처 직원 12명, 법무부 직원 2명, 행정자치부 직원 1명)이다. 방문국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세 나라로서 10박 11일의 여정이다. 독일에서는 베를린과 뮌헨을, 오스트리아에서는 비엔나를, 스위스에서는 쮜리히와 루쩨른, 인터라켄을 경유한다. 벌써 출장을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나서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느낌은 남아 있으니 이 글은 연수과정에서 보고 들은 내용이 필자의 가슴에 남긴 흔적을 적는 것이다. 당연히 여정 중의 아주 미미한 일부일 뿐이고, 다른 일행들의 느낌이나 의견은 무시( )된다. 일행들의 이해를 바랄 뿐이다.
2. 초보들의 첫 경험
웅장한 인천공항에 모인 일행들은 모두 설레는 모습이다. 외국에 처음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려니와 비행기를 처음 타 본다는 분도 있다. 처음이라는 것은 가슴을 떨리게 하기도 하고 부풀게 하기도 한다.
비행시간은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 왜 생기는지를 충분히 알게 해 줄 정도로 힘들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필자를 비롯하여 흡연자들은 짧은 시간동안 재빨리 담배를 피워댄다.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체크인하는 순간 일행 중의 한 분이 수하물표를 분실하였다고 한다. 루프트한자의 여직원은 얄밉게도 수하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모두 큰 일 났다는 생각들뿐이다. 그 짐이 어디 가랴 하는 심정과 어쩌랴 하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갈아탄다. 베를린에 도착해서 수하물이 쏟아져 나오는 통로를 일렬로 서서 노려본다. 다행히도 그 짐이 나온다. 그것도 제일 먼저. 순간 일행들은 모두 간이 콩알만 해져 있던 아줌마에게 환호를 하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아마 당사자는 온 몸에 진이 쭉 빠졌으리라.
3. 진지함에 대하여
독일 법무성 방문 때의 일이다. 법무성 건물은 통일 전에는 동독의 공보처가 있었고, 1989년 11월 동독인의 여행의 자유를 선언한 곳이라고 한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장으로 올라가면서 본 사무실의 광경이 가슴 쓰리게 한다. 널찍한 사무실 한 칸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다. 좋은 장소에서 근무해야 양질의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왕이면...
이름은 잊었지만, 50은 넘은 듯한 은백색의 단발머리를 가진 지적인 분위기의 담당관이 우리를 맞아 준다.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다녀간 적이 있다고 하니 일행들은 모두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다.
미팅은 독일의 법제시스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일행들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간단히 시간을 때우려는 기색이 완연하던 아줌마( )의 표정은 일행들의 진지한 자세에 바뀌어갔다. 결국은 예정시간을 30분가량 초과하는 실례를 범한 끝에 회의장에 침범하여 무언의 시위를 한 안내직원의 공( )으로 미팅이 끝났다. 진지했던 만큼 짧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진했다.
나오는 길에 가이드로부터 독일 법무성에서는 한국인들의 방문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처럼 진지한 미팅을 보지 못했다면서 놀라워한다. 대부분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미팅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이 한국인의 방문을 꺼리는 이유란다. 그제야 그 아줌마( )의 처음 태도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된다. 우리 일행들이 한국인에 대한 그 담당관의 인식을 바꾸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하고 바래본다.
4. 분서갱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서로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한 명씩 주고받았다 한다. 바그너와 히틀러다.
베를린 시내의 훔볼트 대학 앞에는 바벨이라는 이름의 광장이 있다. 히틀러가 어용학생들을 동원하여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의 저서를 수거하여 태운 장소라고 한다. 자그마치 3일간을 탔다니 그 양을 짐작할 수조차 없다. 독일판 분서갱유라고 불릴 만하다. 이 사건을 기화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엑소더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하이데거, 칼 슈미트 등 우리가 아는 친나치 지식인들도 상당하다. 이유가 뭘까.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 위에서 사회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려는 절대권력과 그 권력을 통하여 이상세계의 실현을 꿈꾸는 지식인들의 결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진시황도 법가이던 이사와 손잡았던 것 아니던가.
광장 옆의 훔볼트 대학이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을 비롯하여 2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유서깊은 명문대학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5. 자존심싸움
베를린 중심가를 벗어나면 전승기념탑이 있다. 약 30미터 높이인데,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는 이런 볼썽사나운 건조물은 이상하게도 어디에나 있다.
1871년의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비스마르크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프랑스와 평화협정을 맺는다. 거기까지는 그럴만한데, 그 다음이 문제다. 프랑스인의 자존심이라 할 만한 그 궁전에서 프로이센의 왕이 독일황제로서의 즉위식을 거행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인들의 쓰라린 감정을 이해할 만도 하고, 비스마르크의 의도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존심싸움은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한번 시작되면 국가간에도 끝이 없다. 세계 제1차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강화조약에 조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6. 분단의 흔적
베를린에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물으면 대부분 베를린 장벽을 꼽는다. 분단의 상징이었다는 사실과 십 수 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현실의 역사이기 때문이리라.
동독 안의 섬이던 서베를린을 둘러싼 장벽의 길이는 자그마치 150㎞였는데, 지금은 1㎞정도만 남아 있다. 높이는 약 3~4미터는 되어 보인다. 장벽은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인데, 남아 있는 장벽조차 많이 헐어 있다. 일부 상혼은 남아 있는 것조차도 조그맣게 떼어내어 팔고 있다. 보관이 가장 잘 되어 있는 부분에는 전 세계 미술가들이 초청되어 그렸다는 벽화가 연이어 있다.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도 있다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이제는 시간이 오래 흘러 그림도 바래버렸다. 역사적 유물은 역사적으로 관광상품이다.
참고로 이번 출장 전까지 일행들 대부분은 서베를린은 서독에, 동베를린은 동독에 있었던 것인 줄로만 알았다.
7. 예속의 역사
베를린 외곽에는 올림픽경기장이 있다. 손기정옹이 1936년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골인한 그 경기장이다. 한창 보수를 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으니 아쉽다. 경기장은 무려 60년 이상을 별 이상이 없이 버텨왔다 한다. 태풍에 날아가 버린 제주월드컵경기장의 지붕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가이드가 얄밉기까지 하다. 바티칸 대성당에 비하면, 별일도 아닌데 말이다.
베를린 올림픽의 최고영웅은 제시 오웬스다. 당시에는 꿈도 못 꿀 육상4관왕을 차지한 대선수다. 당시 히틀러는 그에 대한 금메달 수여를 거부했단다. 오웬스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목 놓아 부르짖던 이 인종 차별주의자에게는 몹시도 거슬렸던 모양이다.
경기장에는 역대 마라톤 우승자들의 명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손기정옹의 명판에는 국적도 일본으로 되어 있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과거를 몸서리쳐 하는 한국인이 이를 참을 수 있었겠는가. 한참 전에 독일에 살던 열혈 교포 한 분이 야간에 경기장에 잠입하여 명판의 국적과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체포되었고 명판은 다시 원상회복되었다 한다. 그 와중에 손기정옹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인의 비문에는 어떤 글이 쓰였을까. “영광을 이루고도 그 영광 때문에 슬펐던 한국인이 지다”.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8. 문화체험기
외국을 체험할 기회가 적은 우리들에게는 이국의 풍광이 정말로 새롭다. 웅장하거나 고색창연한 건축물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짧은 시간이 모자란다. 그래서 사진이 동원된다. 그런데 사진으로 담아올 수 없는 것이 있다. 문화다.
일행 중의 한 명은 출장기간 내내 문화론을 모토로 외치고 다닌다. 표피가 아니라 심층의 문화를 보아야 한다, 문화를 체험하지 않고는 그 나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등등. 다 옳은 말이다. 그래서 독일 방문 3일째 베를린의 사우나를 찾았다. 젊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고, 얼마 전 어느 한국인은 방문기간인 3일내내 그 사우나를 찾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잔뜩 기대에 부푼다. 남녀혼탕이니까 당연( )하다. 독일에서는 남자전용, 여자전용의 사우나에 가는 사람은 동성연애자로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우려( )했던 사태는 전혀 벌어지지 않는다. 젊은 연인은 물론, 부녀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전혀 아무 거리낌이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문화는 시각이고 잣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와중에 필자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안개사우나에 들어갔다가 그만 벌거벗은 여인네의 허벅지에 앉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다( ).
스위스의 노천온천 또한 남녀 혼탕이다. 수영복은 걸친단다. 그래도 그렇지 온통 노인들뿐이다. 퇴직한 노인들을 위해서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간혹 있을 뿐이다. 온천에는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듯 하다. 조용히 온천만 즐기다 나온다.
유럽인은 동물, 그 중에서도 개를 사랑한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는 길거리이다. 차도에서 보도로 올라가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배설물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잘 치우지도 않는 것 같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여러 명이 발바닥에 묻힌 상태로 차량에 탑승하여 일행들을 괴롭게 했다.
9. 공권력이라는 것
뮌헨에서의 일이다. 시청건물이 고색창연하여 구경 차 들어섰다가 용기를 내어 이 문 저 문 열고 들어가 본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2층까지 올라갔는데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더 올라가고 싶지만, 오해를 살 것 같아 내려온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시장실까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갈 수 있단다. 비엔나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수상 집무실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한다. 공적인 공간이 그만큼 일반에 개방되어 있다니 놀랍다.
오스트리아에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오스트리아 경찰청을 방문한 우리 경찰청 방범담당자들이 일반인들의 경찰서 난입에 대한 대처방법을 물었단다. 오스트리아 관계자는 놀란 표정으로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공권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적인 공간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과 공권력의 실제적인 힘이 확보되어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이율배반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10. 장기적인 안목
사람들이 스위스에 가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칼뱅과 쯔빙글리 때문도, 페스탈로찌 때문도 아니다. 알프스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융프라우 때문이다. 꾸물대는 기차를 타고 3,400m를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고지대에까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스키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설원에서 스키를 즐긴다고 한다. 정상에는 눈 덮인 알프스를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고, 빙하를 파내어 만든 얼음동굴이 있다.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정상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고혈압이나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머리와 가슴이 울렁거리고 지끈거려서 참지 못할 듯싶다. 아무리 아름다우면 무엇 하랴, 몸이 괴롭다는데.
융프라우까지의 왕복 기차비는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관광객들이 뿌리는 관광비는 1인당 40만원이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기차비만으로 10만원을 넘게 쓰게 하다니. 융프라우 관광지는 수 십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래의 관광산업을 위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개발한 결과가 오늘날의 융프라우이다. 국토는 이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11. 선택과 집중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와 같은 산지이고 부존자원이 없다.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스위스용병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밑천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은 몸을 팔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지가 처지이다 보니 무척이나 용감하여, 왕의 근위병으로 주로 활동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바티칸의 경비병은 스위스인들로만 뽑는다고 한다. 루쩨른에 가면, 다른 나라의 왕을 위해, 아니 자기 가족을 위해 죽어간 스위스용병을 기리는 빈사의 사자상이 있다. 바위벽을 조각한 것인데, 포효하는 사자의 허리께에 부러진 창이 박혀 있어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스위스가 지금은 1인당 GNP에 있어 세계 1위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시계를 비롯한 정밀산업과 금융산업, 그리고 관광산업이 주된 산업이다. 부존자원과 국토의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산업을 육성한 선조들의 지혜가 오늘을 있게 한 것이다.
비슷한 환경에 있으면서 최근 정보산업의 메카로 떠오른 아일랜드의 예를 보더라도 나라의 환경에 맞는 산업을 선택하여 집중 육성하는 것이 나라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12. 남기고 온 것, 가지고 온 것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여기에 적
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림엽서에서나 본 듯한 스위스의 목가적인
시골풍경과 산 허리께에서 본 운해의 감동, 베를린의 그 수많은 건물들, 베르사이유궁전에 비견된다는 비엔나의
쉔부르궁전과 도심 속의 쓰레기소각장, 뮌헨의 대형 맥주홀 등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15명이라는 비교적 많은 인원이 참여하였음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매사에 자제력( )을 발휘한 개개인의 공이다. 아무리 책을 통해 머리에 쌓아 본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만은 못한 법이다. 해외에 나가면 우리나라를 남겨놓고 그 나라를 가지고 와야 하는데, 무엇이 남겨졌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일행 모두는 많은 것을 챙겨 왔다. 풍광이나 문화도 챙겨 왔고, 요즘 유행하는 느낌표(!)도 우리 가슴 속에 많이도 챙겨왔다. 세계는 정말 넓다. 우리도 그 넓은 세계에서의 커다란 일부분이라는 자긍심 또한 일깨워준 좋은 기회였다. 일행들이 가지고 온 소중한 경험들이 이 짧고 단편적인 글에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나누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