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론과 입법론
- 구분법제시론(저자 : 이익현(법제처 경제법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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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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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693
입법은 권리를 창설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며, 특정 영업을 제한하거나 육성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행위는 억제하거나 규제하고 어떤 행위는 조장하거나 지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입법은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직결된다. 이러한 입법이 잘 못될 경우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심각하다. 법은 일단 제정되고 나면 잘 못된 법이라도 법률관계가 형성되고 이해관계자가 생겨날 뿐 아니라 절차 또한 복잡하므로 폐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잘못된 법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폐지되지 않고 있는 법률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해 준다. 그만큼 입법은 시작단계에서부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신중한 입법이란 입법기간의 장단을 가지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입법적 조치가 필요한 사회현실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분석을 통한 객관적 자료에 의해서 뒷받침 되고 합리적 대안의 도출과 그 결과를 예측하며 이해관계인의 참여와 토론을 통한 입법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신중한 입법이 되기 위해서는 입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졸속입법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헌결정을 받는 법률 수 또한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법치주의가 정착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는 입법을 통해 해결하게 되었고, 따라서 입법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급변함에 따라 입법의 내용 또한 복잡하고 전문화되어 간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감안할 때 입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입법의 갖는 사회적 영향이 중대할 뿐 아니라 좋은 입법을 위한 전제로서 학문적 연구가 필요함에도 지금까지 입법학 혹은 입법론에 대한 연구는 놀라울 정도로 미미하다. 벨기에의 Luc J Wintgens 교수는 한편으로는 자연법과의 관계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법과 단절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전자는 실정법은 자연법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될 때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 법을 자연법으로 부터 논리적으로 연역되는 것이라고 볼 때 의지적 규범정립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연적 규범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이로부터 논리적 도출해 내는 것이 법이 되는 것이므로 입법은 자연법의 한 부분으로 간주 된다. 따라서 독자적인 입법학이 설 여백이 별로 없게 된다. 한편, 자연법과의 단절에서 찾는 후자의 견해는 입법을 주권자인 입법자의 재량적 결정으로 본다. 민주국가에서 입법자는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이들이 결정하면 곧 법이 되므로 학문적으로 접근할 여지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 속에서 법학은 법을 이미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출발한다. 따라서 입법론은 법학의 영역에서 등한시 되고 법학은 법해석학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문제는 법학이 해석학을 중심으로 발달되면서 역으로 규범정립작용인 입법을 해석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입법자는 해석자가 아니고 해석 작용과 입법 작용은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법해석자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에서 입법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입법론의 독자적 체계가 확립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입법자는 법해석학적 사고의 포로가 될 염려가 있다. 헬싱키 대학의 Lars D Eriksson 교수는 입법자가 판사, 변호사 혹은 법해석학자와 같은 기준에 따라서 입법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해석자들은 일관성과 내적 통일성이 중요시 한다. 이들은 정치보다는 논리에 더 익숙하고, 정책과 사회변화보다는 법적 전통과 관행을 더 선호하며, 기본적 법 개념과 논리에 의존한다. 에릭슨은 계속해서 지적한다. 입법자들이 해석자와 같은 기준과 자세로 입법을 하게 될 경우 입법을 통해 추구하려는 취지를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해석의 포로가 되고 만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법체계를 가진 국가에서 복지에 관한 입법을 할 경우, 법해석학자와 같은 관념에서 출발하게 되면, 입법취지에 맞는 입법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즉, 자유주의적 법학은 개인주의적 권리개념,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수직적 개념,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의 관념이 없기 때문에, 일관성과 내적 체계성에 집착하게 될 경우 공동체 및 구성원간의 상호관계성에 기초하는 복지입법을 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입법자들은 입법적 결정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분석자료, 입법적 결정이 초래할 효과의 예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적 일관성과 체계성은 입법자의 주요한 관심사가 될 필요가 없다. 입법자의 일차적 과제는 입법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결과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입법자의 태도는 일관성과 내적 체계성에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은 입법자의 역할이기 보다는 법학자, 판사 및 변호사들의 역할이다. 입법학은 이와 같은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보다 넓은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에릭슨의 주장에 강한 반감을 느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법자는 해석자가 아니므로 입법자로서의 독자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경청해야 할 사항이라 판단된다.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는 해석자가 아니고 해석자일 필요도 없다. 헌법은 주권을 행사하도록 위임받은 이들에게 입법권을 주고,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한 광범위한 입법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법은 헌법을 정점으로 하여 체계를 이루고 있으므로 입법 활동이 이와 같은 법체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입법자의 역할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의도하는 질서형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타당하지 일관성과 내적 체계성을 일차적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법체계나 법리를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법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입법이 초래할 결과, 입법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변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법을 소여의 것으로 보고, 통일성과 일관성에 초점을 두는 해석학을 중심으로 한 법학과 달리 독자적인 입법학의 정립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입법적 해결방식은 더욱더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국회의 입법 활동도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상당수는 정부나 국회 또는 로펌으로 진출하여 입법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법해석학적 지식의 포로가 되지 않고, 입법자로서의 건전한 자세 함양을 위해서, 또한 좋은 입법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입법론의 정립과 교육은 시급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