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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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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대 이강섭 법제처장] 휴수동행의 마음으로[2021. 2. 8. 파이낸셜뉴스]
  • 등록일 2021-02-08
  • 조회수422
  • 담당부서 처장실
  • 연락처 044-200-6503
  • 담당자 황현숙

휴수동행의 마음으로[2021. 2. 8. 파이낸셜뉴스]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그 배는 닻과 연결된 밧줄의 길이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이처럼 특정한 수치나 이미지가 닻의 역할을 해 합리적 판단을 제한하는 현상을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또는 '닻 내림 효과'라 한다. 그동안 정부기관은 업무를 대행하거나 위탁받을 대상을 정할 때 관행적으로 '과거 실적'을 요구했다. 실적을 기준으로 사업수행 능력을 평가하려는 행정 편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법령에는 지정이나 위탁의 신청요건으로 '최근 몇 년간의 실적'을 요구하는 형태로 규정돼 있다. 이에 따르면 인적·물적 요건을 충분히 갖추더라도 실적이 없을 경우 경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과거 실적을 보유할 수 없는 신규 사업자나 청년 사업자, 특히 신기술·신산업 분야와 같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려는 사업자에게는 커다란 진입장벽이 된다. 과거부터 이어진 관습이 자유로운 항해를 방해하는 닻이 되는 것이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갖춘 신규·청년 사업자가 창업 첫 단계에서부터 장벽에 부딪히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법제처는 과거 실적을 지정·위탁의 요건으로 규정한 법령을 전반적으로 살펴봤다. 그 결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27개 법령을 발굴해 지난달 5일 일괄개정했다. 이전에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게임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 실적을 반드시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일괄개정을 통해 실적 제출에 대한 사항이 법령에서 삭제됐다. 이제 전문인력 양성 계획, 운영과정 및 강사, 시설·설비, 운영경비 조달계획 등을 적절하게 갖추면 전문인력 양성 실적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게임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적·물적 요건 등을 통해서도 사업수행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이와 같이 발굴된 법령에서 인적·물적 요건에 기반해 사업수행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에는 실적요건을 아예 삭제했다. 그리고 실적을 사업수행 능력이나 전문성 확인의 수단으로 반드시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실적 없이도 신청을 가능하게 하되, 그 실적이 심사·선정 단계에서 우대 등 고려요소가 되도록 규정했다. 관행적으로 활용돼온 '과거 실적'에 대한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신규·청년 사업자에게 참여 기회를 부여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디딤돌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법제처는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법령을 개선해 국민이 공감하는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위 사례처럼 법제처가 자체적으로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는 법령을 찾아내 정비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법령 개선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누구나 불합리한 법령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불편법령 신고게시판을 운영하고, 산업 현장으로 직접 발길을 향해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거나 개선이 필요한 법령이 있는지 의견도 구한다. 매년 법·제도 개선에 관심 있는 국민들을 국민법제관으로 위촉해 법제처 업무 전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정부입법 과정에서 법령안을 심사할 때 국민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는 국민참여심사제도 운영하고 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은 한파보다 더 춥고 시릴 것이다.

 

'시경(詩經)'의 북풍(北風)에 나오는 구절 중 휴수동행(携手同行)이 떠오른다. 북풍이 차갑게 불어대는 벌판이라도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가면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휴수동행의 마음으로 국민과 함께, 국민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법을 다듬어 나가다보면 국민의 삶에 작은 온기라도 보태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