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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위기로 아는 지혜
  • 구분법제만필(저자 : 박병태)
  • 등록일 2009-01-01
  • 조회수 6,387
  • 담당 부서 대변인실
위기를 위기로 아는 지혜 박병태(법제처 기획예산담당관실 사무관) 미국에 가기 전에도 그랬었지만 그곳에 가서 생활하면서도 내심 불안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로부터 예상되는 갖가지 불협화음 때문에 미국이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때때로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며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미국은 9/11 사태라는 역사상 초유의 국가 비상사태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우려와는 달리 모든 미국인들은 평소 자신들의 피부색이나 종교 등으로부터 발산하였던 다양한 주장과 목소리를 위기 극복이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 모았고, 슬픔과 충격 속에서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위기에 대처했다. 사회가 혼란하거나 어려울 때 오히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만의 이익이나 주장을 무모하게 표출함으로써 주변 상황을 걷잡을 수없는 혼란 속으로 몰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마다 미국 유학 중 경험하였던 9/11 사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 주었던 미국 국민이 생각나곤 하여 간단하게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흑인과 소수 민족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 - 미국 미국사회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나에게 유학생활을 시작한 첫 6개월은 미국의 사회구조 전반에 대한 탐색기간이 되었다. 하나의 민족이 한 개의 언어만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와는 달리 피부색과 외모가 다른 민족들이 출신국가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독특한 억양의 영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미국사회 속에서 우리와 다른 모습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한 모습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과 화합이었다. 백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소수 민족과 자신들의 인권운동에만 전념하는 흑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야말로 인구구조상 적지 않은 갈등이 내재된 불안정한 국가라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미국 정부의 인구통계도 이러한 나의 생각이 사회적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2050년에는 백인 인구비율이 현재의 69%에서 52%로 떨어지고, 흑인 비율은 지금의 13%에서 14%로 높아지며, 기 타 소주민족은 18%에서 34%로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망과 함께 20세 이하의 백인 인구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우려하는 백인들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과 함께 이제까지 미국을 주도하여 온 백인과 차별의 대상이었던 흑인 기타 소수 민족간의 갈등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될 것 같았다. 백인 인구비율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반면 흑인 인구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중국인 등 기타 소수민족의 급증과 그들의 사회적 진출 증가로 지금까지 북미대륙에서 백인들이 구가하여 온 우월주의도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천국 - 미국 “미국정부는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강제로 납치하여 노예로 부림으로써 그들이 겪은 고통과 불행에 대한 대가로 3,000억 달러를 보상하여야 한다. 우리의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미국정부를 상대로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마땅히 하여야 할 권리를 주장할 따름이다.” “당신들은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당신들은 노예제도를 직접 격은 당사자가 아니며, 국민의 세금으로 노예제도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다.” 이와 같이 미국 흑인들의 노예제도에 따른 보상(compensation for slavery) 요구와 이에 맞서는 미국 백인들의 공방은 미국 유학중 현지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등 일상의 보도매체를 통하여 접할 수 있었던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노예제도에 대한 보상논의 외에도 흑백 간에 빚어지는 보이지 않는 갈등과 크고 작은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 문제도 미국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죠오지아 대학의 여학생클럽(University of Georgia Sorority)에 흑인 학생의 가입을 반대했던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많은 차별문제가 미국의 사회문제가 된지는 오래되었지만, 3,500만 명으로 미국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과 1억 9,500만 명으로 미국 인구의 69%를 차지하는 백인 간에 발생하는 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미국 인권문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현지의 서점과 도서관 등에는 흑인들이 언제 어떻게 왜 미국에 끌려와 노예로 살게 되었고, 언제 누가 이들을 해방시켰는지를 알려주는 도서들이 적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 원작의 뿌리(Roots)를 비롯하여 노예제도와 관련된 자료들이 비디오테이프 등 갖가지 정보 전달매체를 통해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자료에는 백인농장에서 학대를 받으며 살았던 과거의 흑인 노예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매일 새벽 신문을 배달하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현재의 흑인 소년 이야기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그리고 흑인들이 살아온 이러한 이야기를 어린 자녀에게 읽어 주는 백인들의 모습은 공공도서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도서관 풍경이긴 하였지만, 그러한 광경을 볼 때 마다 묘한 감정이 느껴지곤 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흑인인권운동가들을 통하여 느낀 특이한 점은 이들 흑인들은 국가의 정책이나 국민 전체의 인권이 아닌 자신들만의 인권과 복지만을 끊임없이 외쳐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흑인 목사는 교회에서, 흑인 정치인은 의회에서 그리고 흑인 인권운동가는 거리에서 자신들의 인권신장, 인종차별 폐지, 복지향상 등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흑인들이 출연하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에서도 예외 없이 그들의 인권문제나 노예제도에 대한 보상 문제가 논의의 유일한 초점이 되었다. 국가 문제 전반에 관심을 갖고 있는 흑인 정치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흑인들의 일방적인 인권운동에 대한 백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미온적이었고, 이따금씩 백인우월주의에 도취된 젊은이들이 이러한 보상주장에 대해 신랄한 공방을 벌이기도 하였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1,500만 명의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강제로 끌려와 노예로 전락한 이래 셀 수 없는 흑인 인권운동이 있었으나, 노예제도에 대한 보상논쟁은 1987년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그 후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9/11 테러공격과 흑백간의 놀라운 결집력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노예제도에 대한 금전적 보상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문제 등으로 항의집회가 열리기도 하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대중매체를 통하여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집회나 논쟁이 과열되어 과격한 시위나 유혈폭동으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2001년 9월 11일 테러공격으로 미국 전역에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발발하였을 때 대부분의 흑인들은 백인들과 일체가 되어 국가의 위기 극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는 사실이다. 위기극복에 힘을 모으는 흑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인권운동에만 전념하였던 과거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평소의 불협화음이 위기에는 통일된 국력으로 바뀌는 나라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과 9시 6분에 미국 번영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the World Trade Center twin towers)의 북쪽 타워와 남쪽 타워가 16분 간격으로 민간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리스트(terrorist)의 공격을 받았고, 잠시 후인 9시 30분에는 국방부도 테러공격으로 건물의 일부가 심하게 파괴되는 위기상황이 발발하였다. 테러리스트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되었던 두개의 무역센터 빌딩은 테러공격 후 1시간 30분 만에 차례로 붕괴되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미국 전역에는 전운(戰雲)이 감돌았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국내외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입체적 대응체제에 돌입했다. 얼굴 없는 테러세력에 대하여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 당일 저녁에 있은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는 거대한 빌딩의 기초를 흔들 수는 있어도 미국의 토대를 교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할 때가 왔다. 과거에 우리가 수많은 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국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테러공격이 있은 후 이틀 뒤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매우 강도 높은 어조로 “우리를 향해 선포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결의는 확고하고 강력하다”는 대(對)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승리의 의지를 천명했다. “슬픔의 눈물을 통해 나는 기회를 본다. 우리는 슬프지만 또한 강하고 결의에 차 있다”고 말하며 고뇌에 찬 모습으로 눈물을 훔쳤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도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에 따른 피해 복구와 테러를 응징하기 위한 전쟁준비 명목으로 400억 달러를 긴급 지원키로 합의하는 등 국가 위기에 정치권도 확실히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이 일사불란하게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는 분위기속에서 평소 미국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인권운동에만 힘을 모아왔던 대부분의 흑인들도 다른 백인들과 같이 “God Bless America!”, “I am an American!”을 외치며 자연스럽게 국가의 위기 극복에 동참하였고, 이 사건 이후 인권운동을 하는 흑인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테러공격을 받은 후 미국이 국민의 힘을 결집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벌였던 여러 가지 상징물에 의한 국민통합운동, 예컨대, 국기 게양, 성조기가 그려진 의상 착용 등에 미국 흑인들이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러한 상징 운동 중에서도 9/11 테러 당시 구조 활동을 벌이다 숨져간 소방관, 경찰관, 자원봉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 켜기 캠페인(Keep the Candle Going)”이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이들을 세계의 영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지구촌 국민들의 정신적인 힘을 테러 응징에 동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캠페인에도 미국 흑인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들은 국내외의 전자메일 사용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9/11 테러공격 당시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다 숨져간 이들을 신이 보내준 친구이자 영웅(YOU)으로 상징화하면서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감정에 호소했다. 물론 여기에서의 신(God)은 백인도 지켜주겠지만 흑인 자신들을 더욱 확고하게 지켜주는 공동의 ‘God'으로 그들은 생각하였을 것이다. I asked God for water. He gave me an ocean. I asked God for a flower. He gave me a garden. I asked God for a tree. He gave me a forest. I asked God for a friend. He gave me YOU. 물을 달라고 함에 신께서 바다를, 꽃을 달라고 함에 정원을, 나무를 달라고 함에 숲을, 벗을 달라고 함에 임을 보내주셨네. 9/11 사태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미국 흑인들이었지만, 국가가 위기를 맞게 되자 지금까지의 인권운동을 모두 접어둔 채 오로지 국가를 위해 그들의 힘을 한군데로 모으는 투철한 애국심을 발휘했다. 위기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과도하게 분출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더욱 위태롭게 하였던 수많은 정치후진국 국민들의 인권운동과는 아주 다른 양상임을 알 수 있었다. 국가의 생존이 위협을 받지 않는 평시라면 국민 개개인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보다 강력하게 추구하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색깔을 연출하며 개성 있는 삶을 영위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가 되면 모든 국민은 국가의 생존 유지를 위해 국익에 반하는 개인의 주장이나 색깔은 자제하면서 위기 극복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주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거나 사회가 어지러울 때 개인 또는 집단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자신만의 목소리를 높인다면 국가와 사회가 수습하기 어려운 파국에 이르게 되고, 종국에는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모두 희생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가끔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하는 흑인들이지만 9/11 사태로 국가가 위기에 봉착하자 필사적으로 위기극복에 동참했던 그들의 애국심은, 같은 조상으로부터 태어나서 세계의 어떠한 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함을 지켜온 우리 민족이 국가적 위기에 하나 되는 힘을 모으기 어려웠던 상황을 상기한다면, 우리 국민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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