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시대와 법제 교류
- 구분법제시론(저자 : 이익현(법제처 법제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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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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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59
- 담당 부서
대변인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변방에 머물러 있던 아시아가 정치와 경제에 있어 주요 발언자이자 세계를 이끌어갈 동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제연합(UN)도 미래보고서(State of the Future)에서 아시아를 미래의 매가트렌드(Mega Trend)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으며,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세안(ASEAN)+3의 경제규모가 2014년에는 미국을, 2020년에는 유럽연합(EU)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의 성장잠재력도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계인구의 60퍼센트가 거주하고 세계육지면적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총석탄량의 5분의 3, 석유 및 천연가스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매장되어있다. 우라늄 등 광물자원, 풍부한 수자원, 다양한 생물자원뿐만 아니라, 높은 교육열에 기반을 둔 우수한 인력자원을 고려할 때, 아시아시대의 도래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아시아의 국제적인 위상이 제고되고 아시아 국가 간 인적, 문화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경제통합은 물론이고 ‘원 아시아’(One Asia)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아직 유럽연합과 같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지역공동체가 되기에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아세안, 아세안+3,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다양한 수준의 협력과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교류·협력의 범위와 깊이는 제한적이다. 아시아가 진정한 미래의 매가트렌드가 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간 지식공유가 수반되어야 하며, 이에는 법제분야 협력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법제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에도 법제분야의 교류·협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법제는 무형의 사회인프라(invisible social infra)로서 각종 제도들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근간이 되고, 일단 형성되고 나면 쉽사리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 법제의 중요성에 대해 입법은 인간이 발견한 발명품 중에서 불과 화약보다도 더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입법은 경제·정치 등 사회체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가장 능동적이자 필수불가결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변화에 발맞추어 다양한 나라와의 FTA체결 및 이에 따른 변화, 법학전문대학원제도 도입에 따른 교육제도와 법조인 양성과 충원과 같이 법조문화에 가져다 준 혁명적 변화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평가도 과장이 아니라 할 것이다.
구체적 정치체제는 달라도 법치주의는 현대국가의 보편적 이념이 되었고 많은 아시아 국가에도 법치주의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입법은 가장 효과적인 사회변화의 수단이 될 뿐 아니라 국가간 교류를 위한 전제가 된다. 아시아 각국의 활발한 문화적, 경제적 교류는 상대 국가의 근로조건, 투자보장제도, 조세제도, 심지어 결혼 등에 대해서까지 변경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요구의 대부분이 입법적 조치와 법제적 정비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에 더해 자연재해, 오염문제 등 국경을 초월하는 문제들은 법제교류를 촉진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아시아 각국의 교류와 협력의 증진, 통합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법제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또한 법제의 교류협력은 아시아의 공존과 공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각국은 정치 및 경제의 발전정도, 지정학적 여건이 달라 법제 발전정도도 다르고, 장점 및 취약점도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 및 상이함은 교류에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상호보완과 교류를 위한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아시아 각국의 발전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발전경험이 다른 국가에 도움을 줌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 법제 교류·협력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해방 후 지난 6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쟁, 혁명, 군부독재를 거치면서도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신생국들의 염원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비록 국가발전 과정에서 부수적인 시행착오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으나, 한국의 발전경험은 한국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발전경험을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닌 아시아 각국의 공존과 공영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활발한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법제분야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법제는 입법기관이 입법하여 공포한다고 해서 바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다. 입법의도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입법이 작동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야한다. 법률을 집행할 국가조직이 정비되고 공무원이 훈련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즉 제도화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한 나라의 법제를 이해하는 것이 단순히 법령 문구만 연구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가 도입·정착되는 과정, 집행상의 문제점 등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교류와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례화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에서 법제처가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가지고 제안한 것이 아시아법제포럼(Asian Forum of Legislative Information Affairs)이다. 제1회 아시아법제포럼을 거치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법제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바람은 제2차 아시아법제포럼에서도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2회에 걸친 아시아법제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바탕으로, 아시아법제포럼의 정례화를 통해 이 포럼이 아시아 각국의 상호 번영과 공존·공영을 위한 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