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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
  • 구분고전명구(형옥야화/고사성어)(저자 : 홍혁기)
  • 등록일 2009-01-01
  • 조회수 2,350
  • 담당 부서 대변인실
刮 目 相 對 남의 학식이나 포부가 놀랍게 향상되었음을 경탄하여 이르는 말로서 눈을 비비고 주의하여 다시 본다는 뜻. 呂蒙은 중국 삼국시대의 智勇을 겸비한 吳의 장군이다. 그는 본래 學問은 아니하고 武藝만을 익혔던 사람으로 武功을 자주 세워 지위는 높았으나 무식하다는 따돌림을 받았었다. 吳主 孫權이 呂蒙과 蔣欽에게 " 卿들이 모두 요직에 있으니 학문에 힘을 기울여 자질을 높이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呂蒙이 "軍中의 격무로 讀書할 겨를이 없을까 걱정입니다"라고 아뢰니 孫權은 "내가 卿에게 經學博士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지난날의 일들(歷史)을 널리 涉獵하라는 뜻이다. 경은 격무라 말하지만 나에게 비하여 일이 많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려서 《詩經》《書經》《禮記》《左傳》《國語》는 읽었으나 《易經》은 읽지 못하였다. 내가 나라 일을 맡은 이후 三史(史記·漢書·後漢書)를 보았고, 여러 사람의 兵書를 보았다. 내 스스로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경과 같은 사람은 資質이 맑아 노력만 하면 큰 성과를 거둘 것이다. 당장 시작해 보도록 하라. 먼저 《孫子》《六韜》《左傳》《國語》및 三史를 읽도록 하라. 孔子 말씀에 '종일 먹지 아니하고 밤새도록 자지 아니하고 생각하여 보아도 學問만큼 유익한 것이 없다'하였고 光武皇帝(劉秀)는 전쟁터에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으며, 孟德(曹操의 字)은 나이들며 배움을 좋아했다고 하였으니 卿들만이 노력하지 않으려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呂蒙은 이에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온 정력을 쏟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涉獵한 책들은 옛 선비가 따를 수 없을 만큼 폭이 넓고 깊었다. 魯肅이 周瑜를 대신하여 吳의 總帥가 되었다. 노숙이 呂蒙의 師團을 지나다가 呂蒙을 찾았다. 노숙은 평소 呂蒙의 무식을 얕잡아 보던 터였다. 呂蒙을 전과 같이 대하려는데 보좌관이 노숙에게 "呂장군은 군공과 명성이 날로 드러나 있어 옛날과 같이 대우하여서는 아니됩니다."라고 조용히 助言했다. 呂蒙이 魯肅에게 술을 접대하며 "장군께서 중임을 맡으신 이후 荊州의 關羽와 이웃을 하고 있읍니다. 어떠한 戰略으로 비상시에 대비하고 있읍니까"하였다. 노숙은 갑작스런 물음에 "그대그때 적당한 조처를 하련다"라고 얼버무렸다. 呂蒙은 "지금 東西(東은 吳, 西는 漢)가 한집안처럼 친하기는 하나 關羽는 범같은 사람입니다. 배움을 좋아하고 특히 《左傳》을 탐독하여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읍니다. 씩씩하고 英勇스런 기상은 있으나 自負心이 많아 남을 깔보기를 좋아합니다. 지금 그와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두어가지 戰略을 세워 놓고 상대해야 합니다"하고 비밀히 3가지 方略을 건의했다. 노숙은 눈을 크게 뜨고 呂蒙에게 다가앉아 그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그대가 武藝만을 익인 한갓 武將인 줄로만 알았더니 지금 보니 학식이 풍부하여 吳나라에서 옛날의 呂蒙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구려(學識英博非復吳下阿蒙)"하며 기뻐하였다. 呂蒙은 이 말을 받아 "선비는 헤어진지 3일에 눈을 비비고 맞이한다(士別三日卽更刮目相對)하였읍니다. 장군께서 어찌 저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십니까"하고 껄껄 웃었다. 노숙은 그길로 呂蒙의 어머니를 찾아뵙고 呂蒙과 親交를 맺었다. 孫權은 그후 呂蒙을 대견스럽게 여겨 "사람이 성장하며 有益한 곳으로 나아가기를 여몽·장흠처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富와 貴가 드러났음에도 겸손하고 배움을 좋아하여 《書經》을 탐독하였고, 財를 가벼이 여기고 義를 중히 여김은 그 行跡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두 國士가 되었으니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呂蒙은 周瑜와 같이 曹操를 烏林에서 격파하였으며 關羽가 樊을 토벌할 때 여몽은 重病을 가장하여 관우의 방심을 유도하였고, 荊州의 경비가 소홀해진 틈을 노려 부하 士卒들을 장사치로 위장, 형주를 기습 점령하고, 관우를 사로잡기까지 하였었다.[三國 吳書呂蒙傳 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