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법 개정의 내용과 방향
- 구분법제논단(저자 : 홍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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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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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3,635
- 담당 부서
대변인실
차 례
Ⅰ. 행정소송법 개정의 의의
Ⅱ.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의 내용
1. 새로운 소송유형의 신설
2. 항고소송의 대상 확대
3. 항고소송의 원고적격 확대
4. 가구제 제도의 개선
5. 항고소송에 있어 화해제도의 신설
6. 자료제출요구제도의 강화
7. 그 밖의 개정내용
Ⅲ.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의 검토
1. 개설
2.의무이행소송과 예방적 금지소송의 신설
3. 원고적격의 확대 문제
4. 법규명령 등 규범에 대한 행정소송 신설 문제
Ⅳ. 맺는 말
행정소송법 개정의 내용과 방향
홍준형(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I.
행정소송법 개정의 의의
행정에 대한 법적 통제의 강도와 범위가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에 의해 행정소송법의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주지하듯이 현행 행정소송법은 1984년 12월 15일 전면 개정된 것인데, 1962년의 일본 행정사건소송법 모델을 참조한 것이어서 당초부터 비판을 면치 못했고, 시행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1994년 법개정이 있었으나, 1984년 법의 근본적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1984년이면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우리나라가 겪은 변화를 생각하면 행정소송법이 얼마나 낙후된 것인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법원은 행정소송법의 낙후성을 개선하고 국민의 권리구제를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행정소송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행정소송법 개정작업을 추진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이었다. 행정소송법개정위원회는 2002년 4월 1일 개정시안을 마련하여 지난 2004년 10월 28일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개정시안은 의무이행소송 및 예방적 금지소송의 도입, 원고적격의 확대, 항고소송 대상의 확대 등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행정실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행정소송법의 개정은 새로운 21세기형 가버넌스에서 요구되는 행정법시스템의 혁신을 향한 중요한 일보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역사적 시의성이 큼에도 행정소송법 개정작업은 여러 가지 연유로 지연되고 있다. 사실, 작년 10월 28일의 공청회를 전후하여 학계와 관련 실무계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던 터에 개정작업이 일사천리로 나갈 수 없었던 애로가 있었다. 그러나 논란이 있다고 해서, 행정소송법 개정의 내실이 더 보강되는 것이라면 몰라도, 단순히 개정작업이 지지부진 지연되고 있다면 이는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행정소송법 개정문제를 논의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건설적 절충과 진화를 위한 제언의 차원에서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의 내용과 문제점을 검토하고 향후의 추진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Ⅱ.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의 내용
1. 새로운 소송유형의 신설
가. 의무이행소송의 신설
개정시안은 행정청의 부작위나 거부행위에 대한 권익구제절차가 불완전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발본적인 구제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 의무이행소송을 신설하였다. 의무이행소송이란 행정상 이행소송의 일종으로 행정청의 거부행위나 부작위에 대하여 행정행위를 하도록 하는 소송을 말한다. 행정청에게 일정한 행정행위를 할 의무가 있음의 확인을 구하는 의무확인소송, 일정한 작위를 구하는 급부소송, 처분의 적극적 변경을 구하는 형성소송을 포함한다. 의무이행소송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독일의 연방행정법원법(VwGO) 42조 1항 후단의 규정에 의한 ‘의무이행소송’ (Verpflictungsklage)을 들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의무이행소송은 거부처분에 대한 이행소송(Weigerungsgegenklage)과 부작위에 대한 이행소송(Unt tigkeitsklage)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행정법원법 제113조 제5항에서와 같은 재량에 의한 거부나 부작위의 경우 재량행위요구소송(指令訴訟: Bescheidungsklage)이 허용되며, 의무이행판결의 집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强制金(Zwangsgeld)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개정시안은 현행법상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을 폐지하고 행정청의 부작위 또는 거부행위에 대하여 행정행위를 하도록 하는 의무이행소송을 도입하여, 행정행위를 구하는 국민의 신청에 대하여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일정한 행정행위를 하지 않고 부작위로 방치하거나 그 신청을 거부하는 행정행위를 한 경우, ① 신청인은 의무이행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② 법원은 행정청의 거부행위(당사자의 신청을 거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행정청의 행정행위) 또는 부작위가 위법한 때에는, 당사자의 신청에 따른 행정행위를 할 의무가 있음이 명백하고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기속행위 등)에는 행정청이 그 행정행위를 하도록 선고하며, 그 밖의 경우(재량행위 등)에는 행정청이 당사자의 신청에 대하여 판결의 취지에 따라 행정행위를 하도록 선고하게 하였다(§ 51). 개정시안은 의무이행소송을 인용하는 확정판결에 그 사건에 관하여 당사자인 행정청과 그 밖의 관계행정청을 기속하는 기속력을 부여하는 한편(§ 52), 그에 따른 행정행위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제1심 수소법원이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개정시안 제53조에 의한 간접강제를 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거부행위에 대하여 의무이행소송을 제기할 경우 반드시 그 취소소송을 함께 제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부행위의 위법을 이유로 의무이행판결을 할 때에는 그 거부행위를 함께 취소하게 함으로써 거부행위의 효력이 확실히 제거되도록 배려하였다.
나. 예방적 금지소송의 신설
위법한 처분이 행해질 개연성이 매우 높고 사후의 구제방법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의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현행법 하에서는 사전에 그 처분을 금지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반면, 집행정지제도는 일단 처분이 행해진 후의 구제방법이라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와 같이 예방소송이 불허됨으로써 특히 대규모 국책사업이나 개발행위로 인하여 환경오염이나 주민의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처분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행정청의 처분이 있기 전에는 이를 미리 막을 수 있는 길이 봉쇄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개정시안은 예방적 금지소송을 신설하였다. 이에 따르면 행정청이 장래에 일정한 행정행위를 할 것이 임박한 경우에, 그 행정행위의 금지를 구할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가 사후에 그 행정행위의 효력을 다투는 방법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때에는 그 행정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예방적 금지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개정시안은 제4조제4호에서 행정청이 장래에 일정한 행정행위를 할 것이 임박한 경우에 그 행정행위를 금지하는 예방적 금지소송을 항고소송의 종류 중 하나로 열거한 후, 제55조에서 그 원고적격을 규정하여 행정청이 장래에 일정한 행정행위를 할 것이 임박한 경우에 그 행정행위의 금지를 구할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가 사후에 그 행정행위의 효력을 다투는 방법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때에 한하여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제57조에서는 예방적 금지소송의 판결에 관하여 “법원은 행정청의 장래의 일정한 행정행위가 위법하고, 그 행정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행정청에게 그 행정행위를 하지 않도록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항고소송의 대상 확대
개정시안은 항고소송의 대상을 “명령등”으로 확대하였다. 이는 행정소송의 지배범위를 이른바 ‘행정입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으로서 개정시안의 내용 중 어느 것보다도 더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개정시안은 먼저, 제2조 제1항 제1호에서 “행정행위 등”을 “행정청이 행하는 법적·사실적 행위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하 ”행정행위“라 한다) 및 행정심판에 대한 재결”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한편, 제3호에 “명령등”에 관한 정의규정을 신설하여 “행정행위 중 국가기관의 명령·규칙 및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칙을 말한다”고 규정하였다. 개정시안은 이어서 제3조 제1호에서 행정소송의 종류로 항고소송을 열거하면서 이를 “행정행위 등이나 부작위에 대하여 제기하는 소송”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행정소송법이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 “처분 등”을 ①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공권력의 행사, ②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공권력의 행사의 거부, ③ 그밖에 이에 준하는 行政作用, 그리고 ④ 재결, 네 가지로 규정하고 있었던 데 비해, 개정시안은 ①과 ② 대신에 “행정청이 행하는 법적·사실적 행위로서의 공권력의 행사”와 “행정청이 행하는 법적·사실적 행위로서의 공권력의 행사의 거부”를 항고소송의 대상인 “행정행위 등”의 요소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구체적 사실에 대한 집행”이라는 요건을 제외함으로써 “행정행위 등”에 집행행위 외에도 입법적 행위가 포함되도록 한 것이다.
1)그 밖에 명령 등에 대한 항고소송에 대한 개정시안의 법적 규율내용에 관해서는 홍준형, “항고소송의 대상 확대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에 대한 입법론적 고찰―”, 공법연구 제33집 제5호, 2005.6을 참조.
개정시안은 제36조에서 명령 등의 취소소송의 제1심 관할법원을 피고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으로 하고 이를 무효등확인소송과 의무이행소송에 준용하고 있다(§§ 47, 54). 원고적격에 관한 개정시안의 규율, 즉 기존의 “처분 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을 대치한 “행정행위 등의 취소를 구할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라는 기준은 개정시안 제12조, 제44조 및 제48조의 규정에 따라 명령 등에 대한 취소소송, 무효등확인소송뿐 및 의무이행소송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개정시안 제13조에 따라 대통령(대통령령), 국무총리(총리령), 행정각부의 장관(부령) 또는 시·도지사 등이 명령 등에 대한 항고소송의 피고가 되며, 또 행정행위에 대한 취소소송과 행정심판의 선택적 제기를 허용한 개정시안 제19조는 명령 등에 대해서도 행정심판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통령령, 총리령 또는 부령, 조례·규칙에 대한 행정심판도 가능하다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이처럼 개정시안이 항고소송의 대상을 “명령 등”으로까지 확대한 데 대해서는 후술하는 바와 같이 학계나 행정실무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3. 항고소송의 원고적격 확대
2)대법원,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 주요논의사항 , 6.2
개정시안이 추구한 또 하나의 현저한 변화는 항고소송 원고적격의 확대이다. 개정시안은 제12조에서 “취소소송은 행정행위등의 취소를 구할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 행정행위의 효과가 기간의 경과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소멸된 뒤에도 또한 같다.”로 규정하여 현행 행정소송법 제12조에서 “처분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로 되어 있는 원고적격을 넓히고자 시도하였다. 즉, “오늘날 다양한 행정작용으로 인하여 행정행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경우라든가 근거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법적 이익 이외에 헌법 및 여타 법령에 의하여 보호되는 법적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원고적격을 확대하여 권익구제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개정시안은 무효등확인소송의 경우 행정행위등의 명령등의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의 확인을 구할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가, 의무이행소송의 경우 행정행위를 신청한 자로서 행정청의 거부행위 또는 부작위에 대하여 행정행위를 할 것을 구할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원고적격의 인정기준을 통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44, 48).
4. 가구제 제도의 개선
개정시안은 ‘행정행위등이 위법하다는 현저한 의심이 있는 경우’를 집행정지사유의 하나로 추가하고, 이른바 담보제공부 집행정지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가처분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여 행정소송상 가구제 제도를 확충하였다. 현행법에 의한 집행정지제도는 소극적인 현상유지적 기능만 있을 뿐이어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당사자의 지위에 대한 불안제거나 권익구제에 미흡하므로, 위법한 행정작용으로 인한 국민의 권익침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해서는 행정상의 임시구제제도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개정시안은 ① 행정행위등이 위법하다는 상당한 의심이 있는 경우 본안의 관할법원은 다툼의 대상에 관한 가처분과 당사자의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할 수 있고, ② 담보제공부 가처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의 가처분 불허ㆍ가처분 이유의 소명ㆍ가처분결정 및 기각결정에 대한 즉시항고ㆍ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의 가처분 취소 등에 관하여 집행정지에 있어서의 해당 규정을 준용하며, ③ 가처분결정의 기속력과 간접강제에 관하여 취소판결 및 의무이행판결의 해당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였다. 한편, 가처분은 집행정지에 의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보충적인 절차로 규정되어 있다.
5. 항고소송에 있어 화해제도의 신설
행정작용은 그 공익성 때문에 항고소송의 당사자들에게 임의적 화해의 대상으로 맡겨 놓기는 곤란하지만, 행정사건 중 화해에 적합한 사건에 대하여 직권으로 화해권고결정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이를 통해 분쟁의 자율적·종국적인 해결, 법원의 업무부담 경감, 소송요건의 엄격성 완화에 따른 충실한 권익구제, 항고소송에 따른 번잡한 절차 및 소송의 반복 회피 등 많은 효용을 살릴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개정시안은 항고소송에서의 화해권고결정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였다. 개정시안에 따르면, ① 법원은 직권으로 화해권고결정을 할 수 있고, 확정된 화해권고결정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으며, ② 화해에 의하여 직접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받을 제3자 또는 화해의 대상인 행정행위에 관하여 동의·승인·협의 등의 법령상 권한을 가진 행정청이 있는 경우에는 그 제3자 또는 행정청의 동의 등을 받아야 하고, 만약 그러한 동의 등이 없는 경우에는 그 제3자 또는 행정청은 재심청구를 할 수 있다.
6. 자료제출요구제도의 강화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은 문서의 표시ㆍ문서의 취지 및 문서소지인 등을 특정하여 신청하여야 하고 문서소지인이 제출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도 한정되어 있어 행정소송의 심리에 필요한 자료를 현출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좀 더 포괄적인 자료제출요구 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취지에서 개정시안은 사건심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당사자 또는 관계행정청이 보관중인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당사자 또는 관계행정청은 법원으로부터 요구받은 자료를 지체없이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그 자료의 공개가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나 법률상 또는 그 자료의 성질상 이를 비밀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자료제출을 거부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그 자료제출거부의 적법여부를 비공개로 심리·결정하도록 하였다.
7. 그 밖의 개정내용
그 밖에도 개정시안은 효과가 소멸한 행정행위등에 대한 취소판결,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사이의 소의 변경 및 이송제도 보완, 취소판결의 기속력으로서의 결과제거의무규정 등의 신설, 당사자소송의 구체화, 기관소송 법정주의 일부 폐지 등 주목할 만한 제도개선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실무상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개정사항만을 간략히 소개해 보면, 개정시안은 종래 판례상 민사소송으로 다루어졌던 행정상 손실보상, 행정상 손해배상 중 행정행위등의 위법으로 인한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공법상 당사자소송으로 명시하였다. 또한 개정시안은 기관소송 중 권한쟁의와 중첩되지 않는 ‘동일한 공공단체의 기관 상호간에 있어서의 권한분쟁’에 대하여 법정주의를 폐지하였다. 아울러 개정시안은 민사소송을 행정소송으로, 행정소송을 민사소송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사건의 이송에 관한 현행법의 특칙(제7조)을 삭제하여 민사소송법의 준용에 의한 사건의 이송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Ⅲ.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의 검토
1. 개설
앞에서 살펴 본 개정시안에 따른 행정소송법의 개정은 우리나라 행정소송제도를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제도개선의 내용에 관한 한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현재 이 시점에서 직면하고 있는 행정소송법 개정의 문제는 실정법 해석상의 곤란을 해소하기 위한 미시적인 수정·보완이란 차원이 아니라 현행 행정소송법의 시대적 낙후성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토대로 한 전면적 제도개혁 차원의 입법론적 과제이다. 문제의 본질이 그러하다면, 논의의 방향 역시 단순한 법해석론적 수준의 논증보다는 적어도 행정소송법제 수준에서의 법정책적 논의와 의사결정을 지향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동안 행정소송법 개정을 위한 논의과정에서는 법개정에 따른 법정책적 기대효과나 영향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나 분석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고려하면서 특히 학계에서의 논의를 토대로 개정시안의 내용 가운데 주요한 것만을 추려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의무이행소송과 예방적 금지소송의 신설
3)대법원 1990. 10. 23. 선고 90누5467판결(가옥대장등록처분취소: 공1990, 2442) 등.
4) 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누4126 판결(보존문서정정등: 공1992, 1037).
5)대법원 1997. 9. 30. 선고 97누3200판결(공동어업권면허면적조정신청서반려처분취소: 공1997. 11. 1. [45], 3322) 등.
그동안 이론과 실무를 막론하고 의무이행소송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였음에도 불구하고, 판례는 일관하여 의무이행소송불가론을 견지해 왔다. 대법원은 비교적 일찍부터 ‘행정소송법상 행정청으로 하여금 일정한 행정처분을 하도록 명하는 이른바 이행판결을 구하는 소송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해 왔다. 이후에도 대법원은 ‘현행 행정소송법상 의무이행소송이나 의무확인소송은 인정되지 않으며, 행정심판법이 의무이행심판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여 행정소송에서 의무이행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 한다’, ‘현행 행정소송법상 행정청으로 하여금 일정한 행정처분을 하도록 명하는 이행판결을 구하는 소송이나 법원으로 하여금 행정청이 일정 행정처분을 행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행정처분을 직접 행하도록 하는 형성판결을 구하는 소송은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판례가 실정법 해석론(de lege lata)의 차원에서 의무이행소송의 허용여부에 대하여 부정적 태도를 견지해 온 까닭은 실정법, 즉 행정소송법상 이를 인정할 명문의 근거가 없었던 데 있었다고 판단된다. 반면 입법론(de lege ferenda)의 차원에서 의무이행소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현대행정과 행정분쟁의 양상 변화, 행정의 적극적 의무이행을 관철시킬 수 있는 소송상 수단이 결여됨으로 인한 권리구제의 공백 등을 말미암아 의무이행소송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학계, 실무계의 목소리가 고조되어 왔다. 반면 현행법상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은 행정의 의무이행을 관철시키기 위한 소송방법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역시 승소판결을 얻어도 행정청이 당초와 다른 이유를 들어 재차 거부처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무이행소송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한 입법론적 대안으로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은 배경에서 개정시안이 행정의 의무이행을 관철시키기 위한 소송상의 수단으로서 의무이행소송제도를 신설한 것은 만시지탄이라 할 정도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개정시안의 의무이행소송에 관한 규율내용에 대해서도 이제까지의 이론·실무상의 논의성과나 다른 나라에서의 제도와의 비교 등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타당하다고 평가된다.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개정시안이 예방적 금지소송을 신설한 것도, 관계규정의 해석·적용을 통해 그 남용가능성만 잘 억제해 나간다면, 우리나라 행정소송제도의 적실성을 크게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혁신적인 제도개선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3. 원고적격의 확대 문제
6)가령 정하중, “행정소송법개정안의 문제점”, 법률신문 2004. 11. 4를 참조. 또한 金南辰교수는 행정소송법 제12조 제1문의 ‘법률상 이익’조항은 그대로 유지하고, 제2문상의 ‘법률상 이익’은 ‘정당한 이익’으로 개정할 것을 제언하고 있다(金南辰, “취소소송과 법률상 이익 - 행정소송법 제12조의 개정과 관련하여-”, 법률신문 2005. 6. 9 제3368호).
7) 대법원 2004. 8. 16. 선고 2003두2175판결.
8) 金南辰교수는 개정시안에 의한 원고적격 확대안을 일본 行政事件訴訟法改正法과 비교하며, 일본은 어떤 연유로 舊法상의 ‘법률상 이익‘이라는 문언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는지 물으면서, 일본의 行政事件訴訟法 개정 심의에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東京大 小早川光郞교수의 견해를 인용한다. “‘법률상
개정시안에서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적격을 확대한 것은 “법률상 이익”을 ‘당해처분의 근거법규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라고 해석해온 종래의 판례에 대하여 제기된 권익구제의 폭을 지나치게 제한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판단된다. 종래 판례가 ‘법률상 보호이익설’의 입장에서 원고적격 판단에 있어, 오직 당해 처분의 근거법령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이익을 요구한 결과, 근거법령에 의해 직접 보호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실상 보호의 필요성이나 보호가치가 있는 생활상의 이익들의 항고소송에 의한 권익구제의 범위에서 배제되고 마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취지에서 개정시안 제12조가 종래의 “법률상 이익”을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으로 대체함으로써 원고적격을 확대하고자 한 데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충분히 수긍할 만 하다고 본다.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 주요논의사항 을 보면 이와 같은 새로운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원고적격의 범위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즉, 이로써 행정행위의 근거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아닐지라도 명예·신용회복, 헌법상 기본권 등 일반적 법규에 의해 보호되는 정당한 이익이 있는 경우 등에도 원고적격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되는 반면, 사실상 이익이나 반사적 이익이 포함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취지는 향후 개정시안의 그와 같은 개정내용이 개정법을 통해 반영될 경우, 당해 조항들의 해석을 위한 지침 또는 자료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지만,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 주요논의사항 의 의도대로 해석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법적으로’라는 제한이 명시됨으로써 종래와 크게 달라질게 없다는 비판적 견해가 표명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익’과 관련하여 ‘법률상 이익구제설’과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구제설’이 대립하여 왔는바, 그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구제설’의 경우, 그것을 어떻게 formulate하는가는 論者에 따라 차이가 많으며, 同床異夢, 吳越同舟의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결국, ‘법률상 이익’이라는 문언에 가름하여 이쪽이 좋다 하는 식으로 대다수가 찬성하는 문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법률상 이익’이라는 문언의 어디가 나쁜가 종래 이것을 좁게 읽었다고 하게 되면 그 읽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고 한 그의 설명(Jurist, 2004 12. 15, 82면 참조)은 우리 역시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는 것이다(법률신문 2005. 6. 9).
사실 대법원은 현행 행정소송법 제12조의 틀 안에서도 해석을 통해 원고적격을 넓혀 왔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최근 판례를 통해서도 제3자효 행정행위에 관련하여 법률상 이익을 근거법률뿐만 아니라 관련법률에서 보호하고 있는 이익으로 확대하여 파악하려는 태도를 드러낸 바 있다. 즉 “당해 처분의 근거법규 및 관련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법률상 이익이라 함은 당해 처분의 근거법규의 명문규정에 의하여 보호받은 법률상 이익, 당해 처분의 근거법규에 의하여 보호되지는 아니하나 당해 처분의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단계적인 관련처분들의 근거법규에 의하여 명시적으로 보호받는 법률상 이익, 당해 처분의 근거법규 또는 관련법규에서 명시적으로 당해 이익을 보호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근거법규 및 관련법규의 합리적 해석상 그 법규에서 행정청을 제약하는 이유가 순수한 공익의 보호가 아닌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을 보호하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되는 경우를 포함한다”라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행법상 ‘법률상 이익’의 틀 안에서도 원고적격의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문상 ‘법률상 이익’이라는 제한적 틀을 남겨둔 상태에서 판례의 적극주의적 경향 또는 그 지속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만일 ‘정당한 이익’ 또는 ‘보호가치 있는 이익’(또는 ‘법적 보호가치 있는 이익’)으로 표현할 경우 반사적 이익이나 사실상 이익이 포함될 우려가 있다면 이를 정의규정에 포함시켜 예시하면서 ‘공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법령의 규정으로 인해 생기는 단순한 반사적 이익 또는 사실상의 이익은 이 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이익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명시하는 것도 검토할 만한 방안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고적격의 요건을 좀 더 구체화시켜 “법적으로 또는 사실적으로 정당한 이익”이라고 표현하되, ‘공익 보호를 위한 법령의 규정으로 말미암아 단순한 사실상 이익 또는 반사적 이익을 가진 자는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방안, 또는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 주요논의사항 (p.6)에서 천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행정행위의 근거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아닐지라도 명예·신용회복, 헌법상 기본권 등 일반적 법규에 의해 보호되는 정당한 이익이 있는 경우 등에도 원고적격이 있다’는 취지를 정의규정이나 관련 조항의 괄호규정 또는 각호규정 등을 통해 명시하는 방안도 전향적으로 강구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4. 법규명령 등 규범에 대한 행정소송 신설 문제
개정시안이 “명령등”을 “행정행위”라는 개념에 포함시켜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행정의 공권력의 행사로서의 행정작용을 그 행위형식 또는 법적 성질상의 차이를 묻지 아니하고 그로부터 생기는 권리구제문제를 모두 항고소송이라는 단일한 소송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으로 이해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일견 국민에게 권리구제의 길을 넓혀주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비교법 또는 비교법정책론적 견지에서 반드시 더 우월하다고만 볼 수 없는 프랑스 또는 미국식의, 특히 어떤 의미에서는 행위형식의 미분화라는 측면에서 이론적 낙후성을 띤, 그리고 그 적실성이나 적용성과가 불분명한 제도를 도입하여 그동안 행정의 적법성 확보와 국민의 권리구제라는 양대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행정의 행위형식론’의 발전성과를 단절시켜 버림으로써 행정구제에 관한 법과 제도 운용에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개정시안이 “법령 등”을 “행정행위”의 개념에 포함시켜 규율하려 한 진의는 필시 원칙적으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과 다름없이 명령 등에 대한 행정소송의 길을 열어놓으려는데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명령 등에 대해서도 행정소송을 통한 취소하거나 그 무효 또는 부존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그 거부 또는 부작위에 대해서도 의무이행선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과거 법령 등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미치지 못하거나 미약했고 또 헌법재판소와의 관할상의 불명확 등으로 인한 의견대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처럼 법원에서 대통령, 총리, 각부장관들을 피고로 하여 법률의 위임을 받아 제정되는 법령 등을 취소하거나 무효, 부존재 확인하고 나아가 그 제·개정 등에 관한 의무이행을 선고하도록 하는 행정소송제도는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극히 드물고, 무리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9)이에 관하여는 홍준형, 앞의 논문을 참조. 同旨 정하중, “행정소송법개정안의 문제점”, 법률신문 2004. 11. 4; 김중권, 행정소송법개정안의 문제점에 관한 관견. 법률신문 2004. 11. 18 등.
10) 이에 관하여 상세한 것은 홍준형, 앞의 논문과 2004.10.28 공청회자료집을 참조.
11)사실 건국헌법은 현행헌법 제101조와 마찬가지로 제76조에서 “사법권”을 법원에 귀속시키면서도, 제81조에서는 현행헌법 제107조와는 달리 “① 대법원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명령, 규칙과 처분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이 있다. ②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때에는 법원은 헌법위원회에 제청하여 그 결정에 의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건국헌법의 조항은 현행헌법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12)김하열, “행정소송법 개정안에 관한 의견-법규명령에 대한 항고소송의 신설을 중심으로-”, 법원행정처 주최「행정소송법 개정」공청회 토론문, 2004. 10. 28.
13) 김하열, 앞의 글.
더욱이 개정시안은 위헌의 시비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 무엇보다도 현행헌법 제107조 제2항에서 규정하는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의 의미는 이를 건국헌법 제81조 제1항과 같이 해석할 수 없고, 또한 헌법 제107조 제1항과 같은 조 제2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 구절을 그것이 법률에 관한 것이냐 아니면 법률하위명령에 관한 것이냐에 따라 달리 해석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는 대법원 스스로 거듭 확인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즉, 헌법 제101조와 제107조 제1항, 제2항의 해석에 관하여, 대법원은 줄곧 위와 같은 헌법해석에 입각하여 현행 헌법 하에서는 물론, 대법원에 법률의 위헌심사권이 있던 제3공화국 헌법 시행 당시에도 재판의 전제성 없는 규범심사권을 한 번도 행사한 적이 없었다.
“현행 헌법상의 위헌·위법여부의 심사권은 헌법 제102조의 규정에 의하여 법원이 가지며 대법원이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위 규정이 명시한 바와 같이 그 심사권은 법률이나 명령·규칙·처분의 위헌·위법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었을 때에 그 재판의 전제사항으로서만 이를 행사할 수 있을 뿐”
“헌법 제107조 제2항의 규정에 따르면 행정입법의 심사는 일반적인 재판절차에 의하여 구체적 규범통제의 방법에 의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므로, 당사자는 구체적 사건의 심판을 위한 선결문제로서 행정입법의 위법성을 주장하여 법원에 대하여 당해 사건에 대한 적용 여부의 판단을 구할 수 있을 뿐 행정입법 자체의 합법성의 심사를 목적으로 하는 독립한 신청을 제기할 수는 없다.”
14)대법원 1966. 3. 14. 65초6 결정, 대법원 1966. 7. 28. 66카11 결정.
15) 대법원 1994. 4. 26. 93부32 결정, 공 1994, 1705.
16) 헌법재판소 2000. 6. 29. 98헌마36결정(판례집 12-1, 869, 875).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 제107조 제2항이 규정하는 명령·규칙에 대한 재판권의 배분체계를 그와 같은 견지에서 이해해 오고 있다.
“헌법 제107조 제2항은 “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 따른 대법원의 명령ㆍ규칙에 대한 최종심사권은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명령ㆍ규칙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었을 경우 법률과는 달리 헌법재판소에 제청할 것 없이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명령ㆍ규칙 그 자체에 의하여 직접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근거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헌재 1996. 4. 25. 95헌마331, 판례집 8-1, 465, 469- 470).”
17)洪準亨,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에 대한 검토의견”(법원행정처 주최 행정소송법 개정 공청회 토론문을 참조.
18) 박정훈, “抗告訴訟의 對象과 類型”, 법원행정처 주최 행정소송법 개정 공청회(2004. 10. 28) 발제문.
19) 1988년 9월 1일부터 2005년 4월 30일까지 행정입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사건 접수건수는 259건, 자치입법은 19건, 사법입법은 20건에 불과했다. 이는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1160건,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6131건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행정입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사건의 처리실적 역시 233건이 처리되어 결코 낮지 않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자료: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헌법재판정보/사건통계 http://www/court.go.kr/intro/c1_sub03.html.
요컨대, 우리 헌법 제107조는 추상적·직접적 규범통제제도를 알지 못하며, 통제방식 면에서도 처분법률이나 처분적 법규명령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통제가 아니라 부수적 심사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 소정의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의 범위 내에서, 즉, 公權力의 행사 또는 不行使로 인하여 憲法상 보장된 基本權을 침해받은 者는 法院의 裁判을 제외하고는 憲法裁判所에 憲法訴願審判을 請求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헌법소원제도의 범위 내에서 직접통제방식이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개정시안이 명령 등의 취소소송을 도입함으로써 어떤 명령 등이 위법이라고 생각되면, 그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곧바로 당해 명령 등의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사후에 집행행위가 있더라도 미리 제기된 명령 등의 취소소송을 적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헌법 제107조 제2항에서 대법원의 위헌·위법 명령·규칙에 대한 최종적 심사권의 요건으로 규정한 재판의 전제성과 관련하여 위헌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명령 등을, 그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직접 취소소송의 대상으로 삼아 다툴 수 있다는 것은 그 명령 등이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은 경우에도 법원이 이를 취소소송을 통해 취소할 수 있다는 결과가 되어 헌법 제107조 제2항에의 저촉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별도로 제3장 제3절에서 새로운 항고소송의 유형으로서 “명령 등의 폐지소송”에 대한 독자적 규율을 시도한 소수안 역시 그러한 문제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밖에도 명령 등의 취소소송을 객관소송화함으로써 법규명령이 그로부터 권익침해를 받았다고 하는 개인의 쟁송제기로 취소되거나 무효확인되거나 또는 그 거부나 부작위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의무이행선고를 받게 됨으로써 개인의 권익보호에 플러스가 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로 인해 일반추상적 법규범으로서 이미 상당한 기성질서나 법률관계를 형성해 온 법규명령이 취소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불안정성의 문제나 이미 제·개정과정에서 신중한 절차적 통제를 거친 법규명령이 항시 쟁송의 위협에 노출되는데서 오는 행정의 불안과 비효율 문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 경우 당해 명령 등을 취소하는 것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개정시안 제32조의 규정에 의한 사정판결제도를 활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판결주문에서 그 명령 등이 위법함을 명시하는 방법으로 공익을 보호할 수 있는 여지도 있으나, 사정판결의 적용요건은 이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 온 것이 그동안의 판례이자 학설의 태도였으므로,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소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명령 등에 대한 항고소송이 도입될 경우 현실적으로 가장 큰 우려를 낳고 있는 문제는 濫訴의 危險이다. 그러한 소송유형의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도 남소의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시인한다.
명령등은 규범으로서 본질에 따라 일반추상적인 효력·구속력을 발생하므로, 특히 국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내용을 지닌 경우에는, 어느 부분에서든 지역이나 계층 또는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발이나 불복의 대상이 될 개연성이 높다. 특히 정부정책이나 조치에 대한 불만의 수위가 고조되어 온 우리나라 특유의 현실에서, 그 자체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남소의 위험이 현실화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법규명령에 대한 헌법소원의 경우, 심판사건통계는 남소의 폐해와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지만, 각급 관할법원에 기본권 침해 여부를 묻지 아니하고 명령등의 위법·위헌 등을 주장하면서 항고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허용될 경우, 그 경우 예상되는 남소의 가능성은 헌법소원의 경우와는 현저히 다른 차원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명령등에 대한 항고소송의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행정소송이 시민의 접근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서 행정소송의 대상으로 바뀔 경우 濫訴의 위험이 커진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시인한 것일 터이다. 나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하고 나서 다시 원고적격이나 사건의 성숙성 등 이런 저런 소송법상의 이유로 다툼을 차단 또는 제한한다면 행정소송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거나 불만의 압력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만일 법령등 취소소송을 도입한다면 그에 대한 법대중의 기대에 걸 맞는 구제의 실효성이 수반되도록 하는 것이 정도이지, 대상 면에서는 풀어주고 원고적격이나 소의 이익 등을 통해 다시 묶을 수 있다는 발상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행정소송제도 개혁의 정수인 신뢰의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한편, 명령등에 대한 법적 통제는 행정소송이라는 사법적 통제수단 외에 절차적 통제가 주효하다는 인식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명령등에 대한 항고소송이라는 사법적 해법에 호소하기 전에 그와 같은 절차적 통제수단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지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법규명령에 대해서는 이미 법제업무운영규정 등에 의한 정부입법통제가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대통령령의 경우 다른 법규명령에 비해 훨씬 엄격하고 신중한 입법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또 법규명령의 제·개정에 대해서는 행정절차법상 입법예고절차가 적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7년 1월 13일 신설된 국회법 제98조의2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이나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및 훈령·예규·고시 등 행정규칙이 제정 또는 개정된 때에는 7일 이내에 이를 국회에 송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일종의 의회제출 절차를 제도화한 바 있다. 이후 2000년 2월 16일 전문개정과 2003년 7월 18일의 일부개정을 거쳐 국회법 제98조의2에 의한 국회송부제도는 강화된 국회제출의무와 상임위원회의 위법여부 검토 및 소관중앙행정기관 장에 대한 내용통보를 내용으로 한 일종의 국회제출 및 상임위심사제로 확대되었다.
20)이상 상세한 것은 홍준형, 앞의 논문(공법연구 제33집 제5호 소수)을 참조.
아울러 법규명령의 제·개정에 관해서는 그 수권법, 즉 위임명령의 모법을 제정한 국회의 입법책임 문제를 통해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제·개정 주체인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행정각부의 장 등에게 위임입법의 성질상 일반적인 재량적 처분에 있어서의 재량권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입법재량 또는 형성의 자유(Gestaltungsfreiheit)가 인정된다는 것이 학설과 판례를 막론하고 지배적인 견해인데, 이를 일반적인 처분과 마찬가지로 법원이 항고소송을 통해 직접 취소하거나 무효등확인소송의 대상으로 삼아 무효 또는 부존재를 확인하도록 하거나 나아가 의무이행선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법규명령에 대한 통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행정입법에 대한 절차적 통제수단에 의하는 것이 정도이지, 그로부터 발생하는 권리구제문제를 개선한다는 명분만을 내세워 인·허가와 같은 일반적인 행정처분과 마찬가지로 사법부가 취소소송, 무효등확인소송 또는 의무이행소송 같은 항고소송을 통해 직접 취소·무효화하거나 그 제·개정의무를 선고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입법적 선택은 아니라 할 것이다. 행정입법의 통제는 권력분립의 문제이며, 기본적으로 헌법상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인데 이를 모두 사법부가 관여하여 소송형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극히 불균형적인 사법본위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국민의 권리구제에 만전을 기한다는 명분만으로 정당화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와 같이 항고소송의 대상을 “명령 등”으로까지 확대한 개정시안은 이미 앞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명령 등”을 “행정행위”에 포함시켜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는 통일적 규율의 장점보다는 통일적 규율에서 오는 결과의 불확실성이 더 큰 문제로 남는다.
따라서 “명령 등”에 대한 폐지소송을 별도로 규정하는 경우에도 그 제시요건에 재판의 전제성을 추가하거나, 적어도 집행행위가 없더라도 당해 명령 등을 집행하는 처분이 임박했고 그로 인해 원고의 법적으로 정당한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명백한 경우 또는 일단 집행행위가 행해지면 돌이킬 수 없는 권익침해를 입을 것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집행행위 없이도 명령 등의 위법여부를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헌법적으로도 적절하고 법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처분적 법규명령의 경우에는 이를 정의규정에서 행정처분에 포함되는 것으로 명시하거나 별도로 위의 명령 등의 폐지소송의 대상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Ⅳ. 맺는 말
※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법제처의 공식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현행 행정소송법의 낙후성을 부정하거나 행정소송법을 개정 또는 개혁하여 국민의 권리구제 기회를 확충한다는 대의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 4월부터 행정소송법 개정안 작성을 위해 매진해 온 대법원 행정소송법개정위원회의 작업은 우리나라 공법발전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일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역사적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행정소송법 개정작업은 여러 가지 연유로 지연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작년 10월 28일의 공청회를 전후하여 학계와 관련 실무계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던 터에 개정작업이 일사천리로 나갈 수 없었던 애로가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소송법의 개혁은 만시지탄이란 말이 충분하지 못할 만큼 이미 시기적으로 뒤늦은 상태이다. 물론 행정과 시민, 행정부와 사법부의 기본관계를 형성하는 법치행정의 가장 중추적인 회로라 할 수 있는 행정소송법 개정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지만, 지나치게 자기 입장만 고수하려는 자세만으로 임할 경우에는 그 누구라도 개혁 지연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화된 행정소송제도의 초석을 다진다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견을 경청하여 반영하려는 진취적이고 전향적인 실천의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시대, 지금 이 시점에서 행정소송법 제도의 개혁을 모색하는 뜻은 법치행정의 문명적 도구로서 행정소송제도를 변화하는
시대적 여건에 맞게 재발견·재활용하려는데 있다. 과거 해방이후 우리 현실을 지배해 왔던 억압적, 권위주의적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민주적 이행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에 대한 항의와 반발의 습벽을 행정소송 등 정부에 대한 공식적인 법적 항변 내지 통제의 길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특히 정부에 대한 불만을 정치적 항의나 분규가 아니라 소송제도 등을 통해 표출시키고 해결될 수 있도록 행정갈등과 분쟁을 제도권 내에 수용하여 해소하는 것이 가장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확신이 바로 그러한 개혁의 지혜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행정소송법 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입법과제이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것을 뚫고 실천적 조화와 합의를 향해 진군하겠다는 진취적인 실천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