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입법권의 회복
- 구분법제시론(저자 : 민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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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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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397
- 담당 부서
대변인실
국회와 입법권의 회복
민동기(국회 입법차장)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 나라마다 취하고 있는 통치구조나 체제에 상관없이 국민을 본위로 하는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권능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를 두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의 주요 정책은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에서 입법을 통해서 최종 결정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번햄의 말처럼 주권(主權)의 가장 본질적인 표현(the essential expression of sovereignty)이 바로 입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 헌법도 제40조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하듯 입법권은 국회의 본질적인 권한이지만 지난 질곡의 헌정사에서 우리 국회는 여러가지 이유로 그 권능을 행사하는데 제약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었으며, 이로 인해 한때 국민으로부터 통법부(通法府)라는 오명을 받아온 것도 숨길 수 없는 일이다.
국회가 이러한 불명예로부터 벗어날 전환점을 찾은 것은 정치발전속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입법과정을 통하여 국회에서 수렴되는 다원사회로의 전환과정 속에서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이 상당한 변화를 나타내면서부터이다. 특히 제17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의원발의 법률안이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국회의 입법권이 명실상부하게 행사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제17대 국회가 2004년 5월 30일 출범한 이후 2006년 10월 24일 현재까지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의 제출건수는 3,976건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제16대 동일 기간의 제출건수 1,049건과 비교하여 무려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 617건보다 약 6배나 많아 가히 의원입법의 폭발이라고 일컬을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의원발의 법률안을 성안(成案)하는 국회사무처 법제실이 국회의원으로부터 의뢰받아 입안한 법률안도 3,187건이나 되며, 이는 이전 제16대 같은 기간의 의뢰건수 1,150건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며 과거 10년간의 법률안 입안건수 2,698건보다도 많은 실적이다.
아울러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의 비율도 과거에는 정부입법이 80%인데 반해 의원입법은 20%에 머물렀던 것이, 제17대 국회에 와서는 완전히 역전되어 의원발의 법률안이 80%를 차지하여 정부제출 법률안의 네배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의원발의 법률안의 제출 대비 가결률은 35.5%로 이는 제16대 국회의 가결률 21.7%와 대비하여 13.8%가 증가한 것이다. 이는 국회의원의 정책의제설정 능력의 향상과 법제실 등과 같은 입법지원부서의 입법지원활동 강화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국회사무처 법제실은 고객인 국회의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입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국회 의원회관에 입법지원센터를 개소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노력을 다하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의원입법의 가결률 자체는 정부제출 법률안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의원입법의 특성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대의기관인 국회의원은 전체국민의 대표자이면서도 사실상 지역대표자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정부제출 법률안에 비해 의원발의 법률안이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나 지역 및 사회적 약자(Social weak)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게다가 법률은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국민의사의 통합·조정과 기존 틀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수반한다. 이로 인해 정치적·이념적으로 첨예한 사안은 그 특성상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정부보다는 의원이 발의하는 법률안으로 제출되기 마련이다. 이는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을 하나로 조정하는 법률심사과정에서 대부분 보류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의원발의 법률안의 가결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입법과정은 법률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므로 입법시스템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법률의 홍수’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법률의 양적 팽창에 따른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과연 법률안이 특정한 이해당사자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가는 스스로 분명 자문해야 할 사항이며, 제정 또는 개정되고 있는 법률이 관련법들과 상충 되지는 않는가 하는 점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현재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헌법 및 다른 법률과의 상충 여부를 심사하고 있으나, 이러한 자문에 대한 보다 현명한 대답을 제시하기 위하여는 법률이 통과되기 전에 이를 사전에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봇물처럼 쏟아지는 의원입법의 일부는 시민단체 등의 의원 개개인에 대한 평면적인 의정활동평가 공개로 인해 유사한 내용의 개정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시차를 두면서 여러건의 개정법률안이 발의의원을 달리 하여 제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사행산업이 크게 문제가 되어 사행산업의 과도한 사행행위를 통합적으로 감독할 수 있도록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를 설치하려는 법률안이 제출된 적이 있었으나, 사실상 입법취지가 대동소이한 내용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안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소관을 각각 문화관광부와 국무총리실로 달리한 채 동일 법제명으로 발의되어 문화관광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 회부된 후 각각 소관위원회에서 통과되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됨으로써 심사에 혼란이 발생하게 되었다.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국회에서는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을때 이를 해당 소관위원회에서 다루도록 하면서도 다른 위원회의 소관과 관련이 있을 때에는 연석회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국회법 제63조), 소관위원회 회부시에 관련위원회에도 법률안을 회부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 사안에 대하여는 여러 의원이 앞다투어 법률안을 입안하게 됨으로써 입법취지는 같을지라도 감독기구의 소관 등을 달리하여 제출하는 경우 소관상임위원회가 다를 수 밖에 없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법률안의 심사는 소관주의에 맡기더라도 입법과정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동일한 입법취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수개의 법률안이 그 소관만을 달리한 채 제안된다면 후에 제출된 법률안은 먼저 제출된 법률안을 회부받은 상임위원회로 하여금 함께 다루게 하면서 국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관련위원회와의 연석회의와 의견제시 등을 통하여 국회에서 하나의 입법의견이 모아지도록 하는 것이 입법과정에서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물론 전원위원회의 심사와 본회의에서의 수정안 의결 등으로 다른 위원회소속 의원이 소관 상임위원회의 의결내용을 변경할 수도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법률안 발의권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고유한 권한이므로 설령 중복하여 제출한다 하더라도 이를 임의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국회는 이러한 혼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제출된 법률안의 소관이 불분명하거나, 내용은 유사하지만 업무를 담당하는 주무기관 등을 달리하는 여러 건의 법률안이 제출될 경우 의장으로 하여금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하여 그 소관위원회를 정하도록 국회법에서 이미 규정하고 있으나, 실무적 차원에서 입법차장이 관련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등의 의견을 들어 법률안 등의 소관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관련규정을 마련하였다.
우리나라는 2006년 9월 30일을 기준으로 기본법인 헌법을 정점으로 하여 1,158건의 법률과 2,944건의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총 4,102건의 각종 법령이 국민생활을 규율하고 있다. 오늘날 시민의식의 성장과 복지국가의 요청은 이전 시대보다 더욱 많은 법률 수요를 창출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각종 법률로 규율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각양각색인 바, 모든 문제를 법률로 해결하려는 법률만능주의 또는 규범만능주의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화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법치주의의 정착이라는 관점에서 법률을 통하여 균형적으로 규율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본다.
이처럼 다소간의 반론 여지는 있다 하더라도 입법과정을 통하여 상충(trade-off)되는 개별의지를 조정하여 가능한 한 다수인이 수용 가능하도록 입법화하여 법치의 기본을 올곧게 세우는 것이야말로 바로 국회의 책무가 아닌가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적응하고자 하는 입법의지와 정책의제 설정능력이 국회의원들의 활발한 입법활동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원발의 법률안이 형식적인 면에서 제출 건수 면에서나 통과 건수 면에서 정부제출 법률안을 월등히 앞서고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면에서도 국민의 입법수요에 부응하여 국회 스스로가 의원발의 법률안이든 정부제출 법률안이든 국회심사과정에서 공청회와 청문회 등을 통하여 심도있게 다룸으로써 입법의 내실화를 기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입법권의 회복현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가히 시민의식의 폭발이라 일컬을 정도로 사회 각계각층의 개별의지가 표출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국회가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입법과정을 통하여 조정·통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입법권의 회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