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의 해석과 입법사이
- 구분법제시론(저자 : 이상희 법제처 사회문화법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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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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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35
- 담당 부서
대변인실
법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법문에 “대항하지 못한다.”라는 문구
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이 문구의 의미를 찾아 보았을 것이다. 민법과 상법에 특히 이
러한 문구가 많다.
먼저 민법을 보면, 법정대리인의 미성년자에 대한 영업의 허락에 관하여 “미성년자가 법정대
리인으로부터 허락을 얻은 특정한 영업에 관하여는 성년자와 동일한 행위능력이 있다. 법정대
리인은 허락을 취소 또는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제8조).”
고 규정하고 있다. 추인·거절의 상대방에 관하여 “추인 또는 거절의 의사표시는 상대방에 대하
여 하지 아니하면 그 상대방에 대항하지 못한다(제132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채권양도
인의 지명채권양도의 대항요건으로 “지명채권의 양도는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통지하거나 채무
자가 승낙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기타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통지나 승낙은 확정일자 있
는 증서에 의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이외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제450조).”라고 규정하
는 것들이다.
다음으로 상법을 보면, 법정대리인에 의한 영업의 대리에 관하여 “법정대리인이 미성년자, 한
정치산자 또는 금치산자를 위하여 영업을 하는 때에는 등기를 하여야 한다. 법정대리인의 대리
권에 대한 제한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제8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주식의 이전의 대항요건에 관하여 “주식의 이전은 취득자의 성명과 주소를 주주명부에 기재하지 아
니하면 회사에 대항하지 못한다(제337조제1항).”고 규정하고 있으며, 선장의 대리권에 대한 제
한에 관하여 “선장의 대리권에 대한 제한은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제751조).”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대항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
경우 권리관계를 타인에 대하여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으로서 효력이 이미 발생한 권리관계를
상대방 또는 제3자에게 주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보아왔다. 즉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그들 관계
에서 발생한 효력을 상대방 또는 3자에 대하여 대항하지 못할 뿐 상대방 또는 제3자의 측면으로
부터는 반대로 대항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상대방 또는 제3자에게는 해당 권리관계를 주장
할 수 있게 되어 부인권을 가지게 되고 실제로 부인할 것인지의 여부는 부인권자의 자유의 영역
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지명채권의 양도에 관한 민법 제450조를 예로 들어 보면, 지명채권의 양도는 양도인이 채무자
에게 통지하거나 채무자가 승낙하지 아니하면 양도인은 채무자 기타 제삼자에게 양도인의 채권
양도를 주장하지 못할 뿐 채무자 기타 제삼자는 통지나 승낙을 받지 못했더라도 지명채권이 양
도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상법 제337조제1항의 경우에도 주식의 이전에 대하여 주식 취득자의 성명과 주소를 주
주명부에 기재하지 아니하면 실제 주식을 취득한 주주(실질주주)라고 하더라도 주주명부에 기
재하지 아니한 이상 회사에 대하여 의결권 등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주식을 취
득한 자는 회사에 대하여 그 효력관계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일 뿐 회사는 주주명부에 기재되
지 않은 실질주주를 진정한 주식 취득자로 보아 의결권 등을 부여하여도 무방하다는 해석이 된
다. 주식의 양도는 당사자 간의 의사의 합치와 주권의 교부로 효력이 발생하지만, 이를 실질주주
가 회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주주명부에 명의개서를 하여야 하나, 타인명의로 주식을 취득하
는 경우에 회사는 실질관계에 따라 누가 주주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주주명부상의 명의상 주주
(형식주주)가 아닌 실질주주를 주주로서 취급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상법 제337조제1항에 대하여 이와는 다른 견해의 해석을 함으로써 “대항할 수
없다.”라는 의미를 앞으로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입법으로 어떻게 해결하여야
할 것인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최근 판례(2015다248342)는 주주권 행사자를 상법 제337조제1항 등에 따라 주주명부를 기
준으로 확정해야 하고, 회사도 주주명부의 기재에 구속된다고 함으로써 주주명부상 형식주주의
배타적 권리행사를 인정하면서 20여개의 판례가 변경되었다. 물론 상법이 갖는 단체법적인 성
격과 형식적이고 획일적 성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판례를 이해할 필요도
있겠지만 이러한 해석이 “대항하지 못한다”는 문구의 해석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 아니
면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거듭 생각을 해봐도 상법 제337
조제1항의 해석범위를 넘을 우려가 있고, 판례와 같이 상법 제337조제1항을 해석하는 경우 상
호보유주식의 의결권 제한(상법 제369조제3항), 감사선임의 건에서 3%를 넘는 주식의 의결권
제한(상법 제409조제2항) 등과 같이 주식의 의결권 제한을 회피할 목적으로 명의신탁 등을 하
는 경우 회사가 명의자는 실질주주가 아님을 들어 의결권을 제한할 수 없게 되는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입법적 보완조치가 신속하게 뒤따라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민법 등 다
른 법령에서는 “대항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아직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있고 독일의 경우 주식
법에서 “회사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주주명부에 주주로 등록된 자만이 주주로 간주된다(제67
조제2항).”고 규정하여 주주와 회사 모두 주주명부에 구속된다는 이번 판례의 해석을 입법적으
로 해결하여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학계와 실무에서 해석과 입법 사이에서의 논의가
주목된다.